한국경제 위상 높아졌다…한·일 통화스왑의 공로자들

2011-10-2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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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선환 기자) 정부가 700억 달러대 한·일 통화스와프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경제의 위상이 이제는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한 데 따른 정책당국자들의 자신감에 기인한다.

그 중심에는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과 한국은행 이주열 부총재의 끈끈한 정책공조가 한 몫 단단히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신 차관은 국제 금융계에서 ‘제윤’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누군지 알 만큼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신 차관은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으로 재직하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한·미 통화스와프를 성사시켜 이미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산은금융지주 회장인 강만수 전 재정부 장관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이 미국 측에 한·미 통화스와프를 요청했고 실무적으로 접촉하면서 성과를 이뤄냈다면서 그의 공을 치켜세웠다.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에는 차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공동성명 작성을 주도했다. 첨예하게 이견이 갈릴 때는 각국 관료들과 언성을 높이면서 의제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등 저돌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번 한·일 통화스와프 합의도 숨은 조력자(Back Stage)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게 재정부 안팎의 평이다.

재정부의 한 간부는 신 차관에 대해 “그의 친화력과 국제무대에서 넓힌 시야는 글로벌 경제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신 차관은 재정부 공무원 노동조합이 2006년부터 매년 실시하는 ‘닮고 싶은 상사’ 선정에서 4년 연속 톱으로 뽑히는 등 재정부 간부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4년 연속으로 이름을 올린 간부는 신 차관이 재정부 내에서 유일하다.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8년 ‘9월 위기설’로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던 당시 신 차관보는 위기설을 진화하겠다며 외평채 발행에 나섰다가 쓴잔을 마셨다.

그는 당시 “우리 경제가 위기인지 아닌지 보여주러 간다”며 “외평채 발행에 성공하지 못하면 (귀국)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그러나 그는 10억달러 규모의 달러표시 외평채 발행을 연기해야만 했다.

그는 실패 소식을 전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며 “현재 상황이 계속된다면 무리해서 외평채 발행을 강행할 필요가 없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승승장구하던 관료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을 이끈 또다른 공로자로 이주열 한은 부총재를 꼽을 수 있다. 이 부총재는 1977년 한은에 입행한 뒤 해외조사실장과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을 거쳐 부총재보를 역임한 정통 `한은맨‘이다.

이 부총재는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재직시에는 국내외 실물경제 및 금융시장 동향 등을 분석해 통화정책의 효율적 운영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부총재는 김중수 총재 체제 아래서 정부와의 정책협의회를 이끄는 등 껄끄러웠던 한은과 재정부간 밀월관계를 조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통화스와프 체결은 한국 경제의 위상이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면서 "정부와 통화당국은 특히 글로벌 재정위기에서 흔들려온 국내 금융시장 안정에 좋은 시그널을 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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