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섭 SK증권 리서치센터장
최근 2개월간 국내증시는 큰 폭의 하락을 경험했으며 최근엔 일간 변동성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대한 실망과 이에 따른 미국 경기 둔화 우려가 재 부각된 것이 최근 변동성의 직접적인 원인이며 다른 한편으로 유럽의 재정위기와 이에 따른 글로벌 금융기관간 신용경색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주식시장에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스에 대한 유로존의 구제’는 가망 없는 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이고 ‘그리스를 디폴트시키는 것’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과 같은 글로벌 신용경색뿐 아니라 유로존 붕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회피와 회피간 갈등에서 우리의 시각은 전자의 선택이다.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이제 겨우 자생적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글로벌 경제를 생각하면 그리스의 모랄헤저드에 대한 단죄가 가질 시장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위와 같은 시각과 별개로 그리스 디폴트와 이에 따른 영향을 점검해보는 것 또한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된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 될 것인지를 가늠해 보자는 것이다.
우선 그리스디폴트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 할 것으로 평가한다. 이는 그리스와 더불어 문제가 되고 있는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국가군 전체가 국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 문제가 EU의 경제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 EU지역 수출비중이 높은 조선, 자동차, 디스플레이, 무선전화 업종에 일부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도 EU지역이 국내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5%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실물경제에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본시장에 있다. 그리스 디폴트의 대외 익스포져 금액은 1617억 달러로 2008년 리먼사태 당시 6390억 달러의 25.3 %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당시와 비견되는 것은 프랑스 은행 문제 때문이다. 프랑스 은행은 그리스 국채의 32.7%인 527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규모자체가 크지 않지만 프랑스 재정상태 또한 건전하지 못하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 8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프랑스 정부가 은행 등 금융기관을 지원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 디폴트에 따른 자본시장의 영향을 평가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자금이탈이 외국계 전반으로 이루어질지 또는 서유럽계 등에 국한 할지에 대한 예상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대략적인 가정을 통해 이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상황은 리먼사태 이후 유입된 서유럽계와 조세회피지역의 자금 이탈을 가정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328억 달러의 대외부채 감소압박과 주식시장에서 60억 달러의 외국인 자금 이탈이 나타나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서유럽계 자금의 경우 주식시장에서 2011년 들어 지속적으로 비중을 축소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영향이 주식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게 나타날 것이다.
두 번째 상황은 외국인의 자금이탈이 리먼사태 이후 유입된 영미권 및 이외 지역의 자금 이탈로 확대되는 경우이다. 이 경우 725억 달러의 대외부채 감소압박과 주식시장에서 574억 달러 자금 이탈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영미권의 경우 그 동안 주식시장에서 서유럽계의 자금이탈을 흡수했었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의 충격을 더욱 확대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더라도 그리스 디폴트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첫번째 상황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며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약 3000억 달러 수준임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감당 가능한 상황이므로 과도한 공포와 패닉에서 벗어나 보다 차분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