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2일 경기도 나노시티 화성캠퍼스에서 열린 20나노급 D램 양산 가동식에서 이같이 밝혀 세계 반도체 산업의 ‘빅뱅’을 예고했다. 이 회장의 발언은 미국·유럽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의 경기침체로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한데 따른 업체들의 파산 가능성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지난 16일 올해 세계 반도체 매출이 지난해보다 0.1% 하락한 약 2990억 달러(약 331조8900억원)로 전망했다. 이는 가트너가 앞서 2분기에 내놓은 5.1% 성장보다 크게 낮아진 수치다. 가트너는 PC 생산량 증가폭이 크게 줄어든 것이 반도체 성장에 치명적인 요인이라고 밝혔다. 실제 가트너는 당초 9.5% PC 생산 성장률을 전망했으나 3.4%로 크게 낮췄다.
브라이언 루이스(Bryan Lewis) 가트너 부사장은 “악화되는 거시 경제 전망 때문에 2012년 반도체 전망도 8.6%에서 4.6%로 하향 조정했다”며 “미국의 더블딥 경제 침체 가능성이 계속해서 높아져 매출 전망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자 가격 역시 좀처럼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만 반도체 전자상거래사이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주력 제품의 8월 후반기 고정거래가격은 0.52달러를 기록, 이달 전반기 0.61달러보다 14.75% 하락했다. 이는 사상 최저 가격. 역대 최저치는 이번달 상반기 기록했던 0.61달러였다. D램 가격의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D램 개당 생산원가는 0.7달러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생산원가는 0.9달러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모든 업체들이 손해를 보면서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카메라·휴대용저장장치 등에 주로 쓰이는 낸드 플래시의 주력 제품 역시 가격 하락세는 진정됐지만 여전히 바닥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원가 경쟁력에서 앞선 국내 업체들은 상황이 좋은 편이다. 미세 공정에서 우리에게 뒤쳐진 외국 업체들은 적자를 견디다 못해 본격적인 감산에 들어갔다.
세계 D램 반도체시장 5위 업체인 대만 난야는 9월 범용 D램 생산량을 10%가량 줄이기로 했고, 6위 파워칩은 오는 4분기부터 범용 D램 제품 생산량을 절반으로 축소키로 했다. 일본 엘피다 메모리와 미국 마이크론도 물량 조절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날 세계 최초로 20나노급 D램 반도체 양산에 돌입한 데 이어 하이닉스도 내년 상반기 중 20나노 D램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돼 경쟁업체들에 비해 최소 6개월 이상 기술 격차를 벌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불황이 골이 깊어질수록 반도체시장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마지막 치킨게임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