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짓는데 10년째 대출만‥무슨일 있었나

2011-09-2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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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21일 검찰에 수사 의뢰한 고양종합터미널 건설 사업은 7개 저축은행을 영업정지로 끌고 간 한도초과 우회 대출의 대표적 사례다.

사업 초기 단계부터 대규모의 분양사기 사건이 벌어져 시행사와 시공사가 교체되고 설계변경이 이뤄지는 등 곡절을 겪은 끝에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만에 가까스로 준공을 앞둔 곳이다.

그 사이 대출금 회수는커녕 이자도 갚지 못하는 사업장에 대한 불법대출이 반복됐고, 부동산 경기가 급랭하면서 사업성도 나빠져 자산 합계 4조원을 넘는 저축은행 두 곳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 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기 피해자의 원성을 무마하기 위한 불법적인 자금 동원에 금융감독원도 관여했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주목된다.

◇첫걸음부터 삐걱‥‘제2의 굿모닝시티’고양터미널은 경기도 고양시에 일산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서울을 비롯한 인근 도시로의 접근성을 높이고 대규모 상업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1994년부터 사들인 백석동의 노른자위 땅 2만9천㎡에 세워지는 지하 5층, 지상 7층짜리 건물이다.

30개 안팎의 승·하차장을 만들어 50∼60개 노선을 운행하고 지하철 3호선과 연결돼 연간 100만명이 이용하는 교통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에 따라 2002년 말 본격적으로 착공됐다.

그러나 사업은 첫걸음부터 삐걱댔다. 실제 사업부지에 포함되지 않은 땅까지 일반 분양한 시행사의 사기행각이 드러났고, 2004년 시행사 부도에 이어 시공사도 이듬해 교체됐다.

당시는 마침 권력형 게이트로 번졌던 ‘굿모닝시티 분양사기’ 사건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상황. 사기 피해자들은 고양터미널을 ‘제2의 굿모닝시티’로 규정했다.

고양터미널에는 제일저축은행과 에이스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이 묶여 있었다. 피해자 모임인 ‘분양자협의회’는 연일 금융감독원과 제일저축은행 앞에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고양터미널 사업에 대한 제일·에이스저축은행의 불법대출이 본격화한 것도 이때부터다. 300억원씩 대출금이 묶인 이들 두 저축은행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 이 사업에 14차례 추가 대출을 해줬다.

이렇게 해서 나간 대출금이 제일저축은행 1천600억원, 에이스저축은행 4천500억원 등 모두 6천100억원이다. 개별 저축은행의 대출한도를 초과할 수밖에 없는 적지 않은 규모다. 한도 초과 대출은 ‘공동사업자’ 명의로 끌어들인 업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공급됐다.

피해자 보상, 설계 변경, 각종 인·허가 등으로 2∼3년이 흐르는 사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졌고, 이자 납입조차 어려워진 사업에 자꾸 돈을 꿔줘 부실을 덮으려던 제일·에이스저축은행은 결국 영업정지되고 말았다.

◇“금감원 유도했다” 주장에 “어이없는 억지”금감원은 제일·에이스저축은행의 고양터미널 대출을 어떻게 분류할지를 두고 영업정지 결정 막판까지 고민을 거듭했다. 건전성 분류에 따라 충당금이 대폭 늘어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급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양터미널 대출금은 ‘정상’이라는 제일저축은행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1천600억원이 모두 ‘요주의’로 바뀌고, 충당금 부담은 3%에서 10%로 3.3배나 커졌다.

에이스저축은행은 제일저축은행과 채권변제 순위가 동등하다는 입장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출금 4천500억원이 부실에 해당하는 ‘고정’ 또는 ‘회수의문’으로 분류됐다. 고정은 30%, 회수의문은 75%의 충당금 적립률이 적용된다.

이처럼 대규모 불법대출이 이뤄지게 된 배경을 두고 해당 저축은행이 ‘금감원의 암묵적인 유도’ 탓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안이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고양터미널 분양자협의회의 시위가 한창이던 때 피해자들을 원만히 무마하도록 한 금감원이 주문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 해당 저축은행 관계자는 “‘잘 처리하라’라는 말을 들은 저축은행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 300억원 손해 보고 털 사업에 계속 돈을 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추가 대출을 계속하면 한도 초과로 금감원 검사에서 적발될 게 뻔한데도 대출을 강행한 것은 ‘검사 때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는 금감원 회신을 받았다’는 H법무법인의 법률검토 의견서가 한몫했다는 게 이들 저축은행의 주장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들 저축은행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일축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서 곧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H법무법인에 금감원 출신이 많이 포진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주관적으로 파악한 당국의 분위기를 저축은행에 왜곡해 전달한 것으로 추측된다. 확실한 근거도 없는 음해다”라며 “단순히 ‘잘 처리하라’라는 것을 어떻게 불법 대출을 유도한 것으로 이해하느냐”고 반박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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