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가 지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저축은행들은 ‘사금고(私金庫)’로 전락해 불법대출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대주주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거액을 대출하거나 동일인 대출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을 빌려주는 등 불법적인 대출 행태가 업계 전체에 만연해 있었다.
금융당국은 적발된 저축은행에 대해 법적 제재를 가하는 등 엄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대주주가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같은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85개 저축은행에 대한 경영진단을 실시한 결과 대주주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거액을 몰아주거나 동일인 대출 한도를 초과한 금액을 빌려주는 등 불법행위가 대거 포착됐다고 밝혔다.
18일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토마토·에이스·파랑새저축은행 등은 대주주가 직접 운영하는 사업장에 차명계좌를 활용해 대출을 해줬다가 당국에 적발됐다.
불법대출 금액은 최대 수천억원에 달했으며 전체 자산의 70%를 대주주와 연관된 사업장에 대출을 해준 사례까지 있었다.
대주주 대출은 저축은행법상 5년 이하 징역 및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부과된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가 전 국민의 공분(公憤)을 샀지만 업계의 나쁜 관행은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동일인 대출 한도(자기자본의 20%)를 초과해 대출을 해주는 불법행위도 횡행하고 있었다.
조성목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검사1국장은 “저축은행 경영진단 결과 적발된 불법대출의 대부분이 동일인 대출 한도 초과에 관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한도초과 대출 관행은 이미 업계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제일저축은행이 한도초과 대출 혐의로 금감원의 검사를 받은 바 있다. 또 6월에는 프라임저축은행이 대주주에 불법적으로 대출을 해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 때문에 해당 은행에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뱅크런)이 발생해 경영이 악화되기도 했다.
대주주에 대한 대출과 한도초과 대출은 손실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반 대출보다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
충당금 적립액이 늘수록 자기자본이 감소하게 되며 결국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번에 영업정지를 당한 에이스저축은행과 토마토저축은행은 1년새 BIS 비율이 무려 60%포인트와 20%포인트 급락했다.
◆ 당국, “부산저축은행과 달라… 검찰수사 의뢰”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업계에 불법대출 관행이 만연해 있다고 밝혔지만 부산저축은행처럼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대주주 지원에 나선 정황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조 국장은 “SPC 등을 동원한 불법대출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며 이는 금융당국이 조사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적발된 불법대출 행위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불법행위가 드러나 검찰에 고발될 저축은행이 10여곳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법적 제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책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대주주들이 지분 대부분을 소유하고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구조적 문제를 고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 경영진이 따로 있지만 대주주 지분율이 높다 보니 자율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해 부적격한 대주주를 퇴출시키고 지분율을 분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일인 대출 한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80억원이었던 대출 한도를 100억원으로 상향 조정키로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