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삼국지 기행-1허베이편> 1-2 줘저우 “삼형제, 한날 한시에 함께 죽기를 다짐하다”(下)

2012-03-0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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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원결의를 회상하며 - 복숭아정원
 
발걸음을 옮기니 눈 앞에는 정원 곳곳에 전시용으로 심어 놓은 복숭아 나무가 눈에 띄었다. 9월 초인데도 아직까지 나뭇가지에 복숭아가 매달려 있었다.
 
곳곳에 빨간.분홍색의 장미들도 화려하게 피어올라, 어릴 적 만화 삼국지에서 보았던 복숭아 꽃잎이 흩날리고 그 밑에서 술잔을 높이 쳐들며 세형제가 도원결의를 맺던 장면이 떠올랐다.

삼의궁 내 정원 곳곳에 있는 복숭아 나무와 빨간.분홍색의 장미들. 유비 삼형제가 도원결의를 맺었던 장면을 연출케 한다.

 
삼국지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우 부주임이 복숭아 몇 개를 따 우리에게 건냈다.
 
우 부주임은 “중국에서 복숭아 나무는 신성한 나무로 통한다. 복숭아 꽃은 사랑을, 열매는 심령과 마음을 상징하며 나무는 귀신을 쫓아내는 의미가 있다”며 맛을 보라고 권했다.
 
색깔이 원래의 복숭아색처럼 탐스럽지 못한 파란색이라 쓸 것 같아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어보니 걱정과 달리 달았다. 2000년전 그 때를 머리속에 그리며 우 부주임에게 “따거(大哥 형님)”라고 불러 보았더니 얼굴에 웃음이 한 가득 번진다. 그는 유비삼형제의 결의를 흉내내 연배가 아래인 우리 취재진에게 “같은 날 한시에 죽자”는 익살스런 농담을 던졌다.
 
특히 복숭아는 문학작품에서 종종 신선이 즐겨먹는 과일로 묘사되고 복숭아 정원은 신선이 놀음하는 무릉도원을 상징한다. 유비, 관우, 장비는 바로 이곳 복숭아 밭에서 나라와 백성이 편안한 유토피아를 꿈꾸며 의형제 결의를 맺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삼의궁 내 탐스럽게 열린 복숭아.


△ 삼국지의 名馬 - 적로마, 적토마
 
복숭아 밭을 지나 도착한 곳은 마신전(馬神殿). 삼국지 소설에 나오는 대표적인 명마(名馬)인 유비의 적로마와 관우의 적토마 모형이 좌우로 세워져 있다.
 
주인을 해치는 말로 불리웠지만 유비가 생사의 기로에 처했을 때 단숨에 강물을 건너면서 주인의 목숨을 살렸다는 적로마, 그리고 조조가 관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사했다는 천리길도 하루 만에 달린다는 적토마에 대한 고사가 이 두 명마에 더욱 신비감을 더해주는 듯 했다.
 
삼국지 소설에 나오는 대표적인 명마(名馬)인 관우의 적토마.

삼국지 소설에 나오는 대표적인 명마(名馬)인 유비의 적로마.


△ 삼형제의 충의를 기리며- 삼의전
 
마신전을 지나면 유비,관우, 장비를 모셔 놓은 사당인 삼의전(三義殿)이 중앙에 있고 양 옆에 장비전과 관우전이 있다.
 
삼의전에 들어서자 한 가운데 금룡포를 입은 유비를 중심으로 관우와 장비가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다. 우청룡 좌백호를 둔 유비는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러울 게 없다는 듯 흐뭇한 표정이다.

삼의전(三義殿)에 있는 유비,관우, 장비상. 유비를 중심으로 우청룡(관우) 좌백호(장비).

 
중국인들은 세 형제 앞에서 정중하게 참배를 하고 있었다. 이들의 충의 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려는 듯 두 손으로 공손하게 향불에 분향을 한 뒤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절을 두 번 한다.
 
매년 이곳에는 유비나 관우, 장비의 후손들도 찾아와 분향재배를 한 뒤 헌금을 하고 간다고 사당을 지키는 관리인이 소개했다.

△ 忠義의 화신- 관우

관우전에 모셔놓은 관우상. 유난히 얼굴색이 붉다.

 
삼의전 오른 편에는 관우를 모셔놓은 관우전이 있다. 대추빛 붉은 얼굴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수염을 가진 관우상이 우리를 반긴다. 문득 관우의 얼굴색은 왜 항상 붉은지 궁금해졌다.
 
안내원은 “중국 대표적인 전통 연극인 경극(京劇)에서 본래 홍색은 ‘충의(忠義)’를 대변한다”고 설명하면서 “참고로 장비의 얼굴이 흑색인 이유도 바로 ‘정직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오늘 날 중국에서 관우는 ‘무성인(武聖人)’이라 칭하며 ‘문성인(文聖人)’인 공자와 함께 2대 성인으로 불린다. 그만큼 관우가 중국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관우의 깊은 충심은 삼의궁 관우전 앞에 세워진 한 비석에 새겨진 시화에서도 잘 드러났다. ‘풍우죽(風雨竹)’이라 불리는 이 시화는 대나무 모양에 본떠 글자를 새겨 유명하다. 많은 관광객들이 관우의 이 풍우죽 비석 앞에서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삼의궁 관우전 앞에 세워진 ‘풍우죽(風雨竹)’ 비석. 이 시화는 대나무 모양에 본떠 글자를 새겼다.

 
△ 도원결의를 기념하며 -결배석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뒷 쪽으로 가던 중 복숭아 밭 한 가운데 우뚝 선 비석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삼형제의 도원결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결배석(結拜石)이다.
 
매년 삼의궁을 찾는 사람들중에 이 비석 앞에 음식과 술상을 차려놓고 분향을 하면서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 못했지만, 한 해 한 날에 함께 죽기로 맹세하는 젊은이들이 꾀 있다고 안내인은 소개했다.
 
이곳을 지나 뒤편으로 가니 유비, 관우, 장비의 아들인 유선, 관흥, 장포와 함께 세 부인인 감부인, 미부인, 손부인을 모셔놓은 후전(後殿)과 마대, 마초, 제갈량, 황충, 조자룡, 방통, 이렇게 여섯 명의 신하를 모셔놓은 오호전(五侯殿)이 자리잡고 있다.

△ 역사의 기운이 느껴지다 - 구룡비

삼의궁을 한 바퀴 돌고 나오려는 데 문득 저 쪽에 높이 5m는 거뜬히 넘어 보일 것 같은 거대한 옥색 빛깔의 비석이 유난히 눈에 띠었다.

바로 명나라 때 세워져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구룡비(九龍碑)다. 6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비석인 만큼 역사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명나라 때 세형제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구룡비.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말세마리로 끌어내리려했으나 결국 포기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안내원은 “삼의궁에 내려오는 유물 중 문화대혁명 당시 훼손되지 않은 것은 이 구룡비와 산문이 유일하다”며 구룡비에 관해 민간에서 내려오는 신비한 전설을 들려줬다.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말 세 마리로 이 비석을 끌어내리려 했으나 끄떡도 하지 않아 결국 말들 조차 힘이 빠져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는 것. 결국 홍위병들도 비석의 신성함을 알아차리곤 더 이상 비석을 건드리지 않아 다행히 지금까지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비석 앞면에는 명나라 황제의 명으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충의를 기념하기 위해 삼의궁을 재건했다는 내용과 뒷면에는 이 비석을 건립하기 위해 공헌한 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를 겪은 탓에 거의 지워져 글자를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 세 형제의 충의를 기리며 - 충의정

2005년 지역 정부에서 세형제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충의정.

 
삼의궁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길 건너 편에 청동으로 만든 커다란 솥 하나가 서 있었다. 한 황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세 형제의 충성과 의리를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이곳 정부가 지난 2005년에 세운 ‘충의정(忠義鼎)’이다.
 
비문에는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당시 혼란한 정세 속에서 한 나라 왕조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도원결의를 맺고 바로 이곳에서 구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촉한의 영웅인 이들의 애국충심을 기리기 위해 이 충의정을 세웠노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사실 소설 삼국지 속 도원결의는 실제 역사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요소가 대부분이다.
 
당시 나관중이 소설을 쓴 명나라 시대에는 ‘충의’를 중시한 유교 사상이 널리 보급돼 있었다. 시대적 배경 아래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어지러운 나라를 구하고자 의형제를 맺는다는 도원결의는 유교 사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소재였기 때문에 이처럼 가공된 스토리가 탄생한 것이다.
 
다만 유비, 관우, 장비가 맺은 도원결의의 그 정신만큼은 그 어떤 역사서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후대의‘도덕 교과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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