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ancholia on the table'.120 m*120cm 2011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오래된 건물, 책더미, 고양이, 바닷물, 그리고 주름진 천…. 작품속 화면은 동 서양,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자잘한 식으로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해보라고 슬며시 옆구리를 찌른다.'
깊게 주름진 천, 하얀포말로 밀고 들어오는 물결, 마치 연극무대같기도 한 작품들은 웬지 쓸쓸하고 황량한 아름다움이다.
작가는 말하면서도 생각이 흐르는 눈빛이었다. 그림자에도 색깔이 있다고 했던가. 아득한 시선, 회색의 어떤 애잔함이 서린 작품과 닮아보였다.
젊은작가는 일찍 독한 외로움의 길을 걸어왔다.
"서너살때 엄마가 가출했어요. 그때 끝없는 외로움을 느꼈어요."
그때부터였다. 이모집과 고모집을 전전하면서 관찰놀이로 외로움을 달랬다. 자연의 색과 움직임, 생생함을 기록하고 그려내며 조숙한 여자아이로 자라났다. 다행히 엄마가 여섯살때 돌아왔지만 알콜홀릭 아버지와의 삶은 다시 시작됐고 유년시절은 불안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생생한 프로필이다. 불우했던 유년시절을 지나 성실하게 살아낸 오기와 끈기, 열정으로 매끈하게 담아낸 작품안엔 찡해오는 노스탤지어가 가득하다.
작가가 전시장 1층에 걸린 'Melancholia on the table' 작품앞에서 멈췄다.
"교회 건물이에요. 술꾼이었던 아버지를 위해 엄마와 다녔던 교회를 상징하죠. 어둑어둑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엄마를 떠오르게 해요. 엄마가 집을 떠날때 눈이 내렸거든요. 아직도 엄마는 제게 눈이오는 진공상태에요."
6살때 돌아온 엄마는 단칸방에서 한복일을 했다. "돌돌 말린 한복지를 펼치는 순간, 화려하고 고운 빛깔과 풍성한 주름 광택은 너무나 황홀하게 느껴졌다."
8살차이나는 오빠덕분에 중학생때부터 외국원서등 다양한 책들을 접했다. 어릴적부터 글자와 그림을 닥치는대로 읽고 보았던 그는 "가난과 아버지를 벗어날 길은 공부를 하는 길 밖에 없다"고 여겼다.
우주인과 두 신1 Oil on canvas_ 168x168cm.2011 |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니면서 하루 서너시간 쪽잠을 자며 생계를 이었다. 늦은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맞이한 것은 웅크리고 앉아 바라보는 고양이 '나나'였다. '위로'와 위안. 화폭에 옮겨진 나나는 작가가 되고 작가는 나나가 됐다.
"대학부터 대학원까지 11년을 다녔어요. 하루에 알바를 서너개씩 하고 살아가는 자체가 힘든시기였죠. 우주에 있는 것처럼 고독함을 느꼈고 주워온 고양이 나나한테서 우주에서 존재를 만난듯 희망을 보았어요."
작품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나나는 작가에게 각별하다. 14년을 함께 한 이유도 있지만 아버지때문이기도 하다.
대학2학년때 돌아가신 아버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때 심경이 복잡했다. 폭력적이었던 아버지는 내게 어떤 의미인가? 아버지의 인생의 정의를 내린다면 어떻게 말할수 있을까?등 의문표가 붙었지만 아버지였다. "손바닥만큼 살아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와 동시에 나나가 방광결석이 걸렸다. 죽음앞에 당도한 아버지를 보면서 들었던 마음을 나나에게 쏟았다. 세번의 수술, 주변에서 안락사도 권유했지만 나나와 작가는 참았고 이겨냈다.
Where do You go after You have been to the moon_Oil on constructed birchwood_120x240cm 2011 |
'꿈을 실현한 순간은 꿈이 상실되는 순간이며 하나의 꿈이 다른 꿈으로 대체되는 순간', 이때의 기분은 어떨까.
뉴욕 빌딩 사이로 우주인과 버스가 있는 그림, 작가는 이 작품에 '당신은 달에 다녀온 이후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로 달았다.
미웠던 아버지, 이번 전시는 아버지 이야기로 가득하다. 유난히 화면 가득한 건물도 폭력적이고 거친 아버지를 상징한다. 이제는 추억이 된 아버지, 헬룸가스 풍선장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불었던 풍선을 천장에 가득 설치했다.
그리움과 화해. 스물다섯개의 풍선에 단테 '지옥의 문'에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어떤 재능도 추구할 미션도 추구할 열정도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자격도 없지만 그러나 보상받길 바란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가라'.220*220cm.2011 |
이제 작가는 엄마 아부지의 기억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작가는 여러개의 문이 점차 좁아지는 투시도기법으로 그려진 설치작품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가라'고 제목을 붙였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제목을 따 왔다.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는 이경미 작가가 각종 잼병등에 담아낸 고양이 설치작업앞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작가는 이번 전시에 뉴욕 타임스퀘어, 이탈리아 톨레도, 성 소피아 성당, 분당의 미금역등 도심의 정경을 보다 다양한 시점에서 다층적으로 발전시킨 회화 15여점을 선보인다.
또 잼통이나 와인병을 이용한 설치작업과 풍선설치작업, 우주복을 입은 고양이 조각을 전시했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02) 511-0668
◆작가 약력
2006 홍익대학교대학원 회화과 졸업
2004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2000 홍익대학교 판화과 졸업
◆개인전
2011 You Don't Own Me,카이스 갤러리, 서울, 한국
2009 Street On The Table, 카이스 갤러리, 홍콩
2008 金 Nana & 李 Ranken,표 갤러리, 서울, 한국
2007 Room for Nana, 카이스 갤러리 C art cafe, 서울, 한국
2006 The nine doors, 노암 갤러리, 서울, 한국
2005 Nana Inside, 국제 디자인 교류센터, 서울,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