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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조용성 특파원) 현재 국무원 문화부장인 차이우(蔡武)는 공청단파로 분류된다. 그는 12년동안을 공청단 중앙에서 근무했다. 그가 근무하는 동안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쑹더푸(宋德福, 사망), 리커창(李克强) 상무 부총리 등이 공청단 제1서기를 거쳐갔다.
차이우의 커리어는 단조로우며 지방에서의 근무경력이 없다. 공청단 중앙에 들어간 후 그는 이후 계속 정치업무와 선전업무를 했을 뿐이며, 사회를 관리하거나 경제사무를 돌본 경험이 없다. 그가 중공 중앙 대외연락부 부부장을 역임했을 때도 그의 업무는 선전에 치우쳐 있었다.
단조로운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두가지 강점이 있다. 첫째는 그가 국무원의 장관급 인사라는 점이다. 공청단파 인사들은 지방정부에 널리 포진해 있기는 하지만 내각에는 소수에 불과하다. 현재 국무원 27부 부장중 공청단 근무경험이 있는 인물은 차이우와 함께 우아이잉(吳愛英) 사법부장, 한창푸(韓長賦) 농업부장, 리리궈(李立國) 민정부 부장 등 네명에 불과하다. 이 중 한창푸 농업부장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계열 인사로 분류된다. 엄밀히 말해 국무원에 포진한 공청단파 부장은 3명에 불과한 셈이다. 국무원내의 공청단파 인사가 희소하다는 것은 차이우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차이우는 법학 박사 학위를 지니고 있다. 그는 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에서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중국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에서 교수를 겸임하고 있으며 박사생을 지도하고 있다. 또한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학술위원회 고급 자문역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국제관계에서 상당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차이우는 간쑤(甘肅)성 우두(武都)현에서 1949년 10월에 출생했다. 1968년 간쑤성 가오타이(高臺)현 인민공사로 하방돼 농사를 지었으며 이후 1971년 간수 산단(山丹)탄광에서 일했다. 1976년 문혁이 종료된 이후 그는 간쑤성 연료화학국에서 잠깐 근무한다.
대학입시가 부활한 1978년에 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1983년 공청단 중앙 국제연락부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일을 맡은지 얼마되지 않아 상급자의 신임을 얻었으며 공청단 중앙에서 줄곧 국제연락부 부장을 맡았다. 이 기간동안 전국청년연합 부비서장을 겸직하기도 했다. 차이우가 주도해서 성사시킨 3000명 일본청년들을 중국초청 행사는 당시 중일교류의 한 획을 긋는 일이었다.
1995년 46세의 차이우는 중공중앙대외연락부 연구실 주임으로 이동해간다. 4개월후에 그는 중련부 부비서장 겸 연구실주임으로 발탁됐고 2년후인 1997년에 중련부 부부장에 올랐다.
차이우는 중련부 부부장으로서 다년간 정당외교를 담당했다. 세계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풍부한 선전경험을 축적했으며 ‘중련부는 베일에 쌓여있고 공개행사에 노출하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여러차례 외국매체의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그는 외신에 중련부의 직능과 기능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중련부의 비밀스런 이미지를 타파하는 공을 세운다.
차이우는 2004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 정당 국제회의에서 중국공산당 대변인을 맡아 능수능란한 소통기교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국무원신문판공실에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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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그는 장관급인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임 겸 중앙선전부 부부장에 임명된다. 국무원신문판공실 주임을 하던 시절 차이우는 진솔하면서도 실무적인 어법으로 외신기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차이우는 “나는 본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일반적으로 예스노로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먀 “특히 언론대변인은 최대한 많은 소식을 적극적으로 대중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4월 문화부장으로 승진한다. 그의 후임자로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임에 오른 사람은 인민일보 사장 출신인 왕천(王晨)이었다. 왕천의 후임자는 장옌눙(張硏農)이었다. 이들은 모두 중앙선전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화부장에 오른 후 그는 중국문화, 영화, 콘텐츠 산업 부흥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3월 차이우 부장은 한 좌담회에 참석해 중국의 문화산업 발전을 위해 12차5개년계획(2011년~2015년)을 공격적으로 계획했으며 중국 문화산업 부가가치가 작년의 1조위안에서 2015년 2조9400억위안(505조7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이 부장은 “중국 문화산업이 역사상 가장 좋은 발전 시기에 놓여 있다”면서 “앞으로 문화부와 관련 부서들이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시스템을 구축하고 완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