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이번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매각으로 기존 순환출자가 수직구조로 변한 것과 관련,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조항을 지킨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삼성그룹은 14일 삼성카드가 현재 보유 중인 에버랜드 지분 25.6% 가운데 금산법에 저촉되지 않는 5% 미만을 제외한 20.64%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그룹 지배구조가 크게 변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그룹 측은 "지배구조가 변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지주회사 체제로 가겠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지주회사를 비롯해 모든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도 지주회사 전환 계획에 대한 질문에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의 향후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해 몇가지 시나리오를 제기하고 있다. 지배구조가 변한만큼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 유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아가 그룹 계열분리의 신호탄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는 순환출자 구조가 끊어져도 주요 계열사에 대한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은 변함이 없지만 순환출자 구조보다 지배력이 더 약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어떤 식으로든 지배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이런 관측을 낳고 있다.
현재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내세운다는 설(說)이다. 에버랜드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리한 다음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을 자회사로 두고, 금융계열사를 총괄하는 중간금융지주사에 삼성생명을 두는 구조다.
삼성생명을 보험지주회사로 만들 것이란 관측도 이어지고 있다. 보험지주회사가 비금융 계열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금융지주회사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의 관측과 달리 삼성그룹 측은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다.
◇ 관전 포인트는 에버랜드 지분의 향방
업계에서는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블록세일로 △제3자 매각 △삼성그룹 내 비금융 계열사에 매각 △에버랜드가 자사주 형태로 사들이는 방식 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비금융 계열사로의 매각과 자사주 매입 등은 경영쇄신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제3자에 매각하더라도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는 큰 변화가 없는 만큼 굳이 계열사 자금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삼성카드가 현재 에버랜드의 최대주주이기는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25.1%),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각각 8.37%), 이건희 삼성회장(3.72%) 등 오너 일가의 지분이 45%에 달한다. 여기에 계열사들이 보유한 우호지분을 더하면 60%에 육박해 삼성카드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경영권 행사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현대증권 전용기 애널리스트는 "순환출자 구조가 수직구조로 변경된 것일 뿐 지주회사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내년 4월까지 최대 관전 포인트는 '누구에게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파느냐'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