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스케는 9세 때 초등학교를 중퇴한 후 자전거 가게 등에서 더부살이로 전전하다가 15살이 되던 1910년 오사카전등회사에 입사해 공원·검사원으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1917년 퇴사해 전년도에 실용신안특허를 취득한 개량 소켓의 제조·판매에 나섰으며 경쟁사보다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유명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인 1918년엔 마쓰시타전기기구 제작소(현 파나소닉)를 창업했으며 이 회사는 1930년대 라디오 부터 전기 다리미까지 다양한 제품을 제조했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 한사람 한사람이 결국 고객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교훈을 강조했으며 '경영의 신'으로도 불리는 그는 이후 독자적인 경영이념과 경영수완으로 사업경영의 급속한 확충에 성공했다.
마쓰시타의 회사는 2008년 '파나소닉'이란 새 브랜드명을 갖고 글로벌 종합가전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마쓰시타는 일본 경제가 잘 나가던 1970년대 후반에 이미 '일본의 위기'를 직감, 85세 때인 1979년에 사재 70억엔을 털어 마쓰시타정경숙을 세웠다.
이밖에 기업홍보지 'PHP(번영을 통해 평화와 행복을)'를 통해 사상적 계몽운동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해외 사업 관행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갖고 있었지만 56세 때 까지 해외로 나가본 경험이 없었다.
산요의 창시자 이우에 토시오(井植岁男)가 그의 처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