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들은 기다리던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음에 들뜬 분위기다. 하지만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그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해 은행에서 대출받기는 한층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더구나 대출 억제를 핑계로 은행들이 대출금리까지 속속 올리면서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되는 분위기다. 고통 분담은 거부하고 수익만 챙기겠다는 은행들의 행태에 서민들의 분노 또한 커지고 있다.
◇ 은행들 “대출 풀어도 엄격히 제한”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달 18일부터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대출 등 신규 가계대출을 전면 중단했던 농협은 내달 1일부터 대출을 재개한다.
신한은행도 일시 중단시켰던 거치식 분할상환 및 만기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과 엘리트론, 샐러리론, 직장인대출 등의 신용대출을 다음달부터 재개한다.
우리, 하나은행 등도 엄격하게 제한했던 신규 가계대출의 문턱을 다음달부터 낮춘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문턱마저 낮아질 지는 의문이다. 은행들의 실질적인 대출 제한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대출 중단이라는 강경책을 우회해 심사 강화로 대출을 제한했던 우리은행은 실수요 대출은 풀어주되 엄격한 심사기준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자금용도가 불명확한 생활자금용 주택담보대출이나 주식담보대출, 마이너스통장 개설 등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대출 규모가 3천만원 이상이어서 본점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거의 승인이 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나은행은 9월에도 꼼꼼한 대출 심사를 통해 불필요한 대출 수요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주택구입자금이나 전세자금 등 실수요 대출이라는 것을 증빙서류로 뒷받침하는 대출자에게만 대출을 해주고, 용도가 불분명하거나 주식투자 등 투기 목적 대출은 불허하기로 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9월이 되더라도 증빙서류를 다른 때보다 한층 꼼꼼하게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은행들은 이달 들어 예전에는 소득증빙서류를 요구하지 않았던 1억원 이하 주택담보대출도 무조건 관련 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 방침은 내달에도 계속 유지된다.
신한은행은 만기일시상환 방식의 변동금리 대출은 9월에도 대출을 재개하지 않는다.
◇ 대출금리 잇따른 인상에 서민들 ‘분통’은행들의 이 같은 ‘몸사림’은 가계대출 증가율 억제라는 금융당국의 목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월별 대출 증가율 0.6%’라는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폐기됐다. 분기별로 신축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이 당국의 방침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7.2%에 맞추려면 분기별 증가율은 1.8% 내에서 억제돼야 한다. 그런데 농협은 7~8월 증가율이 이미 2%를 넘었고 신한은 2%에 육박하고 있다. 자칫 방심하면 분기별 증가율도 못 맞추기 십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요자가 원하는 대로 대출을 해주면 분기별이든 연도별이든 가이드라인은 지키지 못할 수밖에 없다”며 “은행들의 대출 제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은행들이 대출 억제를 핑계로 대출금리를 잇따라 올리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은 이번주부터 일부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20%포인트 인상했다. 신한은행도 마이너스통장 대출의 금리를 0.50%포인트나 올렸다.
농협도 대출금리 인상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농협 지점 관계자는 “다음달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5%포인트 이상 올려 대출 영업을 재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는 이에 대해 부인했다.
대출 억제를 위해 기존 대출의 상환을 독려하겠다면서도 중도상환수수료 인하는 한사코 거부하는 은행들이 대출금리마저 속속 올리자 서민들의 분노 또한 커지고 있다.
회사원 김정관(40)씨는 “대출을 위해 은행에 갔던 동료가 주택담보대출이 0.6%포인트나 올랐다는 얘기를 했다”며 “이건 서민들은 대출 억제로 고통받는데 은행들은 절대 손해를 안 보겠다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은행들은 겉으로는 “대출금리 인상은 절대 없다”고 내세우면서도 그동안 고객들에게 적용하던 지점장 전결금리, 우수고객 우대금리 등을 아예 없애 실질금리를 상당폭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소비자연맹의 조남희 사무총장은 “서민들은 대출 억제로 제2금융권이나 사채업체로 내몰리는데 은행들은 수익 챙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이는 가계 건전화가 아니라 ‘가계 고통 키우기’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