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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나현 기자) 2004년 데뷔 이래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미치오 슈스케. 올해 들어서는 장편소설 ‘달과 게’로 제144회 나오키 상까지 수상하며 명실공히 일본 최고의 대중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까마귀의 엄지’는 그런 작가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제6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나오키 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에도 후보로 올랐다. 최근에는 영화화까지 결정돼 더욱더 기대감을 불러모으고 있다.
‘까마귀의 엄지’의 주인공 다케자와는 현대사회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중년 ‘루저’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열쇠공 기술을 이용해 그와 콤비를 이뤄 사기행각을 벌이고 다니는 데쓰는 물론이고, 우연찮은 계기로 그들의 집에 더부살이하게 된 마히로와 야히로 자매 역시 백수로 빈둥거리거나 소매치기와 좀도둑질로 밥벌이를 하는 신세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사회부적응자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빈곤한 삶이나 범죄의 어둠이 자아내는 칙칙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문체, 범죄자이긴 하지만 결코 ‘악인’이 아니며 은근히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재치 있는 대화, 그리고 군데군데 등장하는 기발한 말장난 덕분이다.
주로 영어와 일본어의 동음이의어, 철자를 풀어서 재구성하는 애너그램 등을 이용한 자잘한 말장난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반전을 위한 하나의 트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제목에 등장하는 ‘까마귀’ 역시 ‘검다’라는 뜻의 일본어와 발음이 비슷한 ‘프로 사기꾼’을 뜻하는 은어로, 작중 다케자와와 데쓰의 대화에 중요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오는 말장난들에서 상징적인 의미와 복선을 찾아내는 것은 ‘까마귀의 엄지’에서만 접할 수 있는 독특한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