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 평화민주당 대변인

2011-08-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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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에서 가지고 있던 돈을 한판에 다 거는 것을 ‘올인’이라고 한다. 우리 말로 ‘다걸기’지만 역시 ‘올인’이라고 해야 제맛이 느껴진다. 한판 승부로 끝내는 것이 우리 기질에 맞는 탓일까. 이처럼 도박에서 쓰이는 올인이라는 말은 정치판에서도 곧잘 쓰인다.

 필자의 기억에 이말이 제일 어울렸던 정치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면 견문이 짧아서 일까. 좌충우돌하면서 판을 키워 기상천외의 승부수로 국면을 장악하는 진정한 승부사 기질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해서 이런 식의 해법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요즘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진중공업과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지켜보면 이 말이 떠오른다. 두 이슈 모두 여야가 올인하는 모양새인데 서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겠다고 덤비는 모습이 아마 대다수 국민들 눈에는 썩 좋아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조남호 회장이 사태 발생후 50여일 만에 모습을 나타내 해법을 제시했지만 누구도 끝내기 수순이라고 보지 않는다.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 모두에게 위기이자 기회인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노사정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우선 한진중공업 사태의 이면에는 임기후반에 접어든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이명박정부의 노동정책이 지극히 우편향적이고 친기업적이라는 선입견을 바로잡지 않는 한 향후 제2, 제3의 한진중공업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노동정책이 노동자의 반대편에 서있다는 대중의 뿌리깊은 불신이 교정되지 않고서는 어떤 노동정책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적어도 정부의 정책이 국민에게 최소한의 신뢰를 줄 수 있을 때라야만 현장에서 노동정책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이명박정부 노동정책 담당자들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다.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 이 사태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면 임기후반의 이명박 정부는 노동문제에 있어 지렛대를 쥐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 경우라면 이명박 정부는 노동문제에 덜미를 잡히게 되어 결국 겉잡을 수 없는 레임덕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명박 정부는 한진중공업 사태장악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반대편에 서있는 야권에게도 위기이자 기회다. 야권 전체가 단일전선을 형성해 정부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야권이 정치적으로 통합문제를 논의하면서 투쟁의 장으로 한진중공업 사태를 선택한 것은 전략적 판단이다. 여기서 야권이 이기면 내년 총선과 대선가도에 장미빛 청사진을 그릴 수 있으리라.

그러나 올인하다시피 했는데도 한진중공업 투쟁에서 패배한다면 그 미래는? 야권을 한진중공업 사태로 인도한 누군가는 전략적 오류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이 현장의 노동문제에 거의 전면적이다시피 개입하면서 쏟아지고 있는 비난이다. 이는 자칫 야권 지지층의 축소를 가져올 수도 있을뿐더러 정치가 가장 피해가야 할 이념적 경직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도 당사자들에게는 위험한 게임이겠지만 우리 정치에서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주민투표라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대의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장치가 한계에 봉착할 때 직접민주주의 방식이 기능한다.

자신들의 주의주장을 표현하기 위해 집회와 시위를 하는 방식에서부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한 쌍방향 통신 등 다양한 직접민주주의 방식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이라는 선명하고 단일한 주제에 투표로 결론을 내자는 것은 매력적일지는 몰라도 우리 정치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식이면 뭐하러 시장 시의원 선거는 하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협상장을 떠나 길거리를 택할 때 결국 비용은 국민이 지불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양극화에 따라 정치적 표현의 영역에서도 양극화가 진행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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