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고흐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는 상상

2011-08-0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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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미디어 작가겸 출판사 대표)

저작권법에 의하면 저작재산권의 보호기간이 저작자가 사망한 후 기존 50년에서 70년간 존속하도록 개정되어 2013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직접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일부 출판 및 음반업계 등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법에서 저작권을 저작자의 사후에 일정기간이 지난 후 소멸시키고 공유재산인 공공의 영역(public domain)으로 환원시키는 권한을 행사하는 이 잣대의 기준이 어떤 근거로 확립되는 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오늘은 법의 테두리가 아닌 개인적 정서의 테두리에서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한다.
몇 년 전에서부터 한 대기업에서는 미술사에 등장하는 명화들을 직접적으로 이용하여 소위 고급스러운 명품 이미지를 대변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아트마케팅 전략을 전면에 내세워 줄기차게 광고를 제작하고 있다. 친숙하고 유명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합성에 의해 당사의 전자제품을 애용하고, 공간마다 당사의 가전제품이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걸작 풍경화 속에는 당사 홍보 전광판이 떡하니 빛나고 당사 로고 깃발이 펄럭인다. 이 기업의 명화 시리즈 광고는 국내외 광고제에서 수상하는 등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 이른바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교수 등이 이 광고에 대한 소감으로 기업이 국민들의 문화수준을 높여주고 있으며, 보기 어려운 걸작들을 온 국민이 접할 수 있는 역할에 기여하는 점 등을 높게 평가하고, 또한 많은 소비자들도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광고로 인식하여 분명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을 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대중과 전문가들의 호응을 받는 “멋진” 광고를 보았을 때 나의 머리에 즉각 떠오르는 생각은, 기업의 고급스러운 명품 이미지도 아니고, 친숙한 걸작명화에 대한 감상도 아니다. 일단 광고에 이용한 걸작들의 작가들이 만일 이 광고들을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를 상상하면서, 무덤 속에 누워있던 작가들이 기가 막히고 놀라서 벌떡벌떡 일어나는 만화적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곤 한다. 그 어느 작가가 자신의 사후에 남긴 그림이 먼 훗날 세탁기, 텔레비젼, 휴대폰 등을 팔고, 한 기업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기업의 이름을 사랑하노라고 열띤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으리라는 비슷한 상상이라도 했었을까? 이런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면, 많은 이들에게는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보이는 광고물이 내 눈엔 매우 슬프게 느껴진다.

반 고흐처럼 치열하고 광기어린 고독 속에서 힘겹게 가난과 역경과 싸우며 자신의 귀를 자를 만큼 권총으로 자살을 할 만큼 고통스런 번뇌와 아픔을 새기며 캔버스 위에 붓질 하나하나를 그려나간 외로운 화가의 영혼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경쾌한 광고 속의 고흐 방에 놓인 육중한 에어컨, 날렵한 전화기와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기업을 사랑해요 사랑해요”라고 반복하며 찬양하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역설적으로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원 작품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방식의 상업적 작품 왜곡이, 법적으로는 이미 저작자 사후 공적재산으로 환원된 작품이니 저작권에 저해되지 않으며 또한 원화 이미지에 대한 사진 저작권 이용료는 지불하는 것으로 법적 이해관계는 벗어나는 계산은 되어있는 마케팅이기에, 현재로서는 목소리를 잃은 죽은 원작자의 비통함을 대변하는 나의 견해는 개인적이고 정서적 견해일 수 밖에 없다.

저자 사후 저작물을 공공의 재산으로 환원하여 특정인이나 단체가 그 저작권을 독점하여 이익을 독식하지 않고 널리 모든 이가 양질의 컨텐츠를 공유하는 공익적 좋은 취지를 교묘히 이용하여, 앞으로는 또 어떤 상상도 못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자본과 이윤의 축적을 목적으로 예술품을 상업적으로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예술가들이 걸작품을 남기고 죽는 것이 꼭 영광스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프란츠 카프카가 죽으며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태워달라고 부탁한 원고를 유언에 따르지 않고 출간하기로 결정해, 오늘날 우리는 카프카의 주옥 같은 소설들을 읽을 수 있어 브로트의 판단에 감사를 표하지만, 과연 죽은 카프카도 그렇게 생각할 지는 늘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글을 막 마무리하려고 하고있는데, 베란다에서 슈베르트의 “송어”가 울려 퍼진다. 산뜻한 멜로디로 빨래가 끝났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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