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FAO 인턴십을 마치며..

2011-07-28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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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진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09학번

[사진: 장명진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09학번]

2011년 2월 1일 월요일. 길고 긴 비행 끝에 드디어 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로마 본부에 도착한 날 아침은 바로 FAO가 주관하는 전세계적인 Committee on Fisheries (COFI) 의 막이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COFI는 모든 회원국들의 대표단이 한자리에 모여 수산업 분야에서 각 국가가 FAO와 협력하여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전 세계 수산업의 현 주소가 어디인지 점검한다.
그리고 다음 COFI가 열리기 전까지 각 국가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논의하는 세계 수산업의 장(場)이다. COFI는 보통 일주일 동안 열리는데 사실 일주일로 전세계의 회원국들의 상황을 일일이 파악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나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수집하고 반영하기 위해 의장과 사무국 그리고 관련 부처 사람들은 밤낮 없이 일한다. 이러한 수고가 뒷받침되어 평행선을 달리는 것만 같은 여러 국가들이 결국은 합의를 도출해 낸다. 각 국가의 대표단도 전 세계의 국가대표들 앞에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전달하려 애쓴다. 각 국가 대표들은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모색한다. COFI 수산회의는 수산 거버넌스를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다.

거버넌스는국가가 국가사무를 수행할 때 전방위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행정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사회를 관리하는 방식을 뜻하는 중립적 개념이다. 거버넌스는 크게 메커니즘, 제도 그리고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버넌스의 대상인 소유권(Tenure)에 이해 관계를 가진 시민, 집단 등이 각자의 이익 실현을 위해 서로 상충되는 부분을 조정하고 법적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며 이뤄진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단 기간에 급 성장을 목표로 삼다 보니 정책의 전 과정에 효율성을 최우선시 했으며 좋은 거버넌스를 구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간과했을 지 모른다. 필자 또한 거버넌스에 대한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엔 자칫하면 시간이 무한정 걸릴 수도 있는 그런 복잡한 과정을 왜 꼭 거쳐야 하는가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5개월 간 FAO 수산부에서 인턴십을 마친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좋은 거버넌스를 해야지만 장기적으로 최대한 많은 이들이 만족하는 정책이 실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절약되는 효율적인 정책 집행을 위해 다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묵살해 버린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며, 나쁜 거버넌스로 인해 다시 정책 형성 단계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리하면 결국 전자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되는 것은 물론, 이해관계자들의 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 또한 대부분 나쁜 거버넌스로 인한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나쁜 거버넌스란 결국 좋은 거버넌스의 반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저조하고 정책 과정이 불투명하며 그에 따라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잃는 거버넌스를 뜻한다.

6월21일부터 22일까지 서초동 교육문화회관에서 한국 수산 거버넌스 국제워크샵이 열렸다. 2월 초 본격적으로 시작된 준비부터 6월 워크샵까지 인턴으로서 참여할 수 있던 것은 드문 경험이었다. 로마 FAO에서 두 명의 전문가도 참여한 이 국제워크샵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한다. 먼저 국가 경제 관점에서 업무 영역이 줄어드는 수산업의 발전을 위해 관련 정부기관, 경제이익집단, 시민단체 등에서 관심을 가지고 모였다는 점, 거버넌스라는 특정 관점에서 우리나라 수산업 정책목표들이 효과적으로 달성되고 있는지 고찰하는 자리가 되었다는 점, 한국의 수산업을 예로 7월 4-6일에 로마 FAO에서 열린 세계 거버넌스 토론대회의 사전적 모델을 만드는 기회가 된 점, 마지막으로 전체 어업 생산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연근해 관계자들부터 상대적으로 규모가 미약한 내수면 분야의 이해관계자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했다는 점에서다.

첫 번째 토론의 좌장을 맡으셨던 박성쾌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이 워크샵이 거버넌스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이니만큼 상자 속의 사람과 상자 밖의 사람이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수산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수록 상자 밖의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견해였는데 이 워크샵의 최종 목표도 같은 맥락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 분야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활발한 의견 교환을 통해 어떤 합의점에 도달했을 때에서야 이 분야 외의 사람들에게 수산업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 지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수산업은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연근해 어업부터 양식업까지, 다양한 어업이 모두 산재해 있을 만큼 구조가 복잡하며 다양하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조직들이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 그 규모와 비중에 따라 거버넌스가 실현되는 기저에 힘의 논리가 작용하기 쉽다. 따라서 수산업이 국제 경제 중심부로부터 떨어져 가는 만큼 상대적으로 힘을 집중시키지 못하는 소규모 어민들이나 민간단체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최소한 이 워크샵에서는 비교적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다는 점이 참 바람직했다.

이 워크샵과 같이 공식적인 대화의 장을 자주 여는 것은 좋은 거버넌스를 실현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여는 소통의 장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시스템이 먼저 정비되어야 근본적으로 좋은 거버넌스를 구현할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정부 측은 어업인들의 소득 증대라는 동일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자체의 자치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정책에 지역 특성을 더욱 반영할 수 있도록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어업종사자들에게 준법정신을 지닐 것, 당사자간들의 합의를 선행할 것,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를 근거 삼아 요구 사항을 내세울 것을 부탁했다. 국가 경제에서 수산업 비중이 줄어드는 만큼 집중과 선택이 중요하다는 데에도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민간 측의 전문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고 정부 내에도 수산업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노력해야 될 필요성도 강조하였다. 민간단체들은 각 지역, 어업 특성에 맞는 의견들을 제시했으며 어민들이 자율어업관리제도에 적극 참여하고 자원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토론 중간에 지엽적인 문제로 논쟁이 있었는데, 양측은 의견차를 좁히지 않고 각자의 주장만 함으로써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예를 현장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이미 수적으로 우세한 여성 어업 종사자들이 더욱 활발히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의 시급성과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갈등의 심화나 정책의 실패에 대해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도록 모든 주체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임이 마지막으로 강조되었다.


정부는 정책에, 민간단체는 행동원칙에, 그리고 연구자들은 연구 분야에 이 워크샵의 결론을 즉각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에 우선해서 모두가 원점으로 돌아가 좋은 거버넌스의 다섯 가지 원칙인 참여, 어업인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 투명성, 정책 수단의 효과성, 정책의 일관성을 늘 염두에 두고 소통하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FAO 수산부에서 일 하면서 배운 것, 느낀 것이 참 많았지만 무엇보다 이 워크샵을 통해 우리나라 수산 거버넌스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체험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각 분야의 연구자들의 발표를 보고 우리나라의 수산업 현주소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다. 최대한 다수의 어민들이 행복해지는 정책을 위해 다양한 방면에 종사하며 고민하는 이해관계자들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했다. 대규모 워크샵은 아니었음에도 많은 참가자들이 자리를 지키며 마지막 세션까지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수산업의 미래가 조금 더 밝아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워크샵이 대한민국 수산 거버넌스의 축소판이었다면 회의장 밖에서의 실제 거버넌스도 그 때와 같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FAO 수산부의 인턴으로서 5개월이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좋은 거버넌스가 구현되어야 하는 이유와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큰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필자가 한국의 국익 실현과 세계 기아 해결에 기여하기 위해 국제 무대에서 서는 그 날까지 그 동안 보아온 대한민국 수산인들의 열의와 수고를 기억하며 충실히 준비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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