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김종갑(현 지멘스코리아 대표) 전 하이닉스 대표는 과거 기자와 만나 "평생 공무원 생활만 했던 사람이 하이닉스 사장에 임명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고, 그 이유는 바로 '매각'이라고 암시를 해주기도 했다. 아울러 대한민국 4대 그룹 외에는 하이닉스를 인수할 기업이 없다는 귀띔도 했다. 하이닉스 자체적으로 덩치가 너무 컸고, 어지간한 기업이 인수한다 해도 시황에 민감한 산업의 특성상 리스크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 1990년대 후반 IMF 당시 수백 개의 국내 기업들이 M&A 시장에 매물로 나왔고, 이렇게 매물로 나온 기업들의 짝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전경련이다.
물론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이런 '부띠끄'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높은 곳에서의 '지시'를 받고 단순히 계약서만 작성해주는 일을 한 것이다. 당연히 외부 M&A 전문가들이 투입됐다.
하이닉스 역시 IMF 당시 정부에 의한 고강도 구조조정에 의해 LG그룹에서 현대그룹으로 넘어갔고, 이후 주인 없는 회사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당시의 정치적 논리에 대해 불쾌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SKT의 이번 하이닉스 인수전 참여에서도 IMF 당시의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SKT가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내건 시너지는 아무 것도 없다. 사업다각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룹 자체가 안정적인 괘도에 올라선 마당에 '선택과 집중'은 못할망정 사업다각화는 설득력이 약하다. 차라리 그룹 전체가 해운업에 치중되어 있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겠다'는 STX의 명분이 강해 보인다.
SK그룹은 요즘 여기저기서 터지는 악재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모두 민감한 사안들이다. 내부적으로는 실타래가 단단히 얽혀 있고, 정부를 비롯한 외부 시선은 무언가 단단히 오해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생각을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전임 하이닉스 사장이 말한 하이닉스 매각 조건, 즉 4대 그룹 외에는 새로운 주인을 물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과거 IMF 당시의 구습이 SK를 통해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SK 관계자는 1년 넘게 하이닉스 인수를 검토했다고 말했지만 그룹의 신사업을 총괄적으로 검토하는 G&G 추진단이 설립된 것은 아직 1년도 채 안된 것도 의아하다.
이와 관련, SK그룹 관계자는 SKT가 단독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G&G 추진단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SKT 관계자는 G&G 추진단에서 이미 '스터디'를 했다고 밝혔다. 누구 말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하이닉스라는 거대 기업을 인수하는데 그룹에서 관여하지 않았다는 말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