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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셰의 이날 발언은 첩첩한 악재로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의 붕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시장에서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역내에 재정위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회원국간 경제 격차를 줄이고, 공조기반을 탄탄하게 다지지 않는 한 유로존이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트리셰는 은행권은 물론 비은행권에 대한 규제 강화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비은행권 등 금융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관에 대한 규제에 있어 여지껏 상당한 진척을 이뤘지만, 부정기적인 규제 강화 등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는 보험, 헤지펀드, 머니마켓펀드(MMF) 등 이른바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System) 부문에 대한 규제 강화 방침을 시사한 것으로 읽힌다. 앞서 제이미 카루아나 국제결제은행(BIS) 이사도 최근 그림자 금융권이 촉발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처하기 위한 감시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리셰는 유로존과 EU 차원에서 공공재정에 대한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유럽집행위원회(EC)는 재정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상호 감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EU 경제 거버넌스'를 제안했지만, 유럽의회의 저항으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트리셰는 "부(富)를 창출한다는 관점에서 재정에 대한 지배구조를 강화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 지배구조 강화 작업은 내일이 아니라, 내일 이후를 위한 일"이라며 "EU의 경제를 총괄하는 장관을 통해 연방제인 미국보다 더 유연한 지배구조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리셰의 'EU 재무장관'론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라고 WSJ는 지적했다. 잘 사는 나라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주요 반론이다. 일례로 안데르스 보리 스웨덴 재무장관은 이날 "EU 재무장관론은 회원국간 '이체(transfer)'를 늘리자는 것에 불과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EU 내 경제 정책을 통합하면 결국 잘 사는 북유럽 국가들이 돈을 이체해 남부 국가를 구제하는 게 다반사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보리는 "'이체연합(transfer union)'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며 "부자 나라 유권자들에게 씀씀이가 큰 가난한 나라들을 구제해 달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