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4월 고시공부만 열중하던 홍 대표는 이씨를 고려대 앞 국민은행 안암동 지점에 돈을 찾으러 갔다가 창구에서 처음 봤다. 그는 이후 매일 이씨를 보기 위해 점심 먹고 학교에 올라가는 길에 은행에 들러 2000∼3000원씩 찾았다.
그해 5월 이씨는 갑자기 보이지 않았고, 홍 대표는 결국 ‘에이, 딴 데로 전근 갔나보다’고 포기했다. 그러나 운명처럼 그해 10월말 사법시험 일정이 석달 뒤로 연기된다는 발표가 있던 날 돈을 찾으러 은행에 들른 홍 대표는 환하게 미소짓는 창구의 이씨를 다시 보게 된다.
홍 대표는 친구에게 ‘짝사랑’의 감정을 털어놨고, 친구들은 국민은행선배에게 부탁해 퇴근 후 이씨를 취원 다방으로 나오게 했다. 다방에서 이뤄진 소개팅.
데이트 후 홍 대표는 고대 앞 라면 집에서 이씨에게 용기를 내어“나는 돈도 없고 군대도 갔다 오지 않았지만 네가 좋다. 혹시 내가 좋거든 다음주 수요일까지 중앙도서관 4층 법대도서관으로 온나.” 수줍은 프로포즈했다.
이씨의 선택은 빨랐다. 수요일이 아닌 월요일 이 씨는 빨간 코트를 입고 중앙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홍 대표가 반가운 마음에 “수요일까지 오라고 했는데 오늘 왔네”라고 말을 건넸고, 이씨는 “오늘 오면 안됩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씨는 가난한 고학생이자 ‘촌놈’ 홍 대표에게 한결 같았다. 매월 월급날 주말에는 고속버스를 타고 혼자 울산에 살고 있던 홍 대표의 어머니를 찾았다. “울산에 가 보면 우리가 월세방 사는 매우 가난한 집안인 것을 알 수 있음에도 그 사람은 나를 변함없이 대해줬다”고 홍 대표는 지금도 고마워 한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1982년 12월23일 결혼으로 결실을 맺었다. 헌신적 사랑에 대해 이씨는 “사람을 좋아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고 했고, 홍 대표는 “다시 태어나도 ‘달덩이’ 같은 착한 사람(이씨)과 결혼하고 싶다”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