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민 행장은 투자은행(IB) 전문가로 산업은행 민영화의 필요 조건으로 꼽혔던 인수합병(M&A) 작업에서 성과를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리먼 브러더스 인수에 실패한 데 이어 태국 시암시티은행과 외환은행 인수전에서도 고배를 마시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민간 출신이라는 것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해 정부와의 의견 조율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정부는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한 산업은행을 이끌 새 수장으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낙점했다.
산업은행 민영화 완수를 위해 관료 출신 최고경영자(CEO)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은 취임 후 얼마 동안 몸을 낮추며 관망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우리금융지주 매각 방안이 발표되자 인수 의지를 드러내며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국내 은행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M&A를 통한 대형화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대내외적으로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자체 인수자금 조달 계획과 ‘듀얼 뱅크(인수 후에도 두 은행이 독립 법인으로 유지되는 것)’ 방안을 내놓으면서 국면 전환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강 회장의 도전은 정치권의 반대를 부담스러워한 금융당국이 입장을 바꾸면서 한달 간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우리금융 인수에 실패한 산은지주와 산업은행은 당분간 내실을 다지면서 다른 매물을 찾아야 할 상황이다.
◆ 내년 중 지점 100개 돌파… 몸 만들기 돌입
산업은행은 오는 2014년 5월 이후 정부지분 매각 등 민영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 전까지 수신기반 확충 등 민영화를 대비한 준비 작업에 힘을 쏟기로 했다.
산은은 올해 안에 지점을 20개 늘리고 내년 중 20~30개를 추가 개설해 지점 수 100개를 넘긴다는 목표를 세웠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지점을 150~200개 정도로 확대하고 전체 조달자금 중 30% 가량을 예수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면 독자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여건이 갖춰지게 된다”며 “현재 3조원대인 원화 예수금 잔액을 15조원 내외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점 수 증가에 따라 신입행원 채용 규모도 늘릴 예정이다.
금융당국도 산은의 지점 수 및 인력 확대 전략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산은이 시중은행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영업망과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며 “산은이 요청하는 사항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산은은 비교 우위를 보이고 있는 투자은행(IB) 업무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기업금융, 기업구조조정 부문에 대한 역량 강화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산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정부 주도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했지만 민영화 이후에도 충분히 시장 친화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본다”며 “현대건설 매각을 추진하면서 각종 논란이 불거졌던 데 반해 산은이 추진하는 구조조정 작업은 잡음이 덜하다”고 강조했다.
◆ M&A 통한 민영화 의지 확고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졌던 우리금융 인수전에서는 중도 탈락했지만 그렇다고 산은의 M&A 의지가 꺾인 것은 아니다.
강 회장은 지난 14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산은이 현재 추세대로 지점을 매년 20개씩 늘려 시중은행 수준인 1000개까지 확대하려면 50년이 걸린다”고 언급했다.
내부 경쟁력 강화를 통한 민영화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식한 발언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거나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 금융기관은 모두 산은의 잠재적 인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농협과 수협 등이 인수 대상으로 거론된 데 이어 최근에는 우체국 예금 부문에 대한 인수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우체국은 지식경제부 산하 기관인데다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기금 사업의 자금줄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산은과의 통합이 현실화하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산은이 M&A에 목말라 있다는 방증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외환은행 인수다.
하나금융지주가 인수를 추진하고 있지만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가 법정 공방에 휘말리면서 인수 여부를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금융도 이번에 일괄매각 방식의 민영화가 실패한 후 다음 정권 들어 분리매각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럴 경우 하나금융이 우리금융의 은행부문 인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 있어 산은에 기회가 올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산은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다른 금융기관을 인수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민영화 방법”이라며 “기회만 주어진다면 국내는 물론 해외 은행 인수전에도 뛰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