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이태리 장인과 도장 장인

2011-06-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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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바리락스 MMC 파트너스 회장)

얼마 전 우리 와이프가 즐겨보던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입어서 유행이 된 반짝반짝 빛나는 트레이닝복이 있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내 눈에는 민망해 보여 저 옷의 이름이 뭐냐고 했더니 와이프가 하는 말이 요즘 아주 인기 있는 '현빈표 한땀한땀 이태리 장인이 수놓은 트레이닝복'이란다.

그 옷의 이름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바로 이태리 장인이 만들었기에 비싼 옷이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장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세상의 가치를 높이고 품격을 더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장인을 바라보는 눈이 모두 그럴까.

장인이 만든 작품은 정성이 들어 있고, 그만큼 가치가 있기에 비싼 값을 지불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과연 우리 모두가 하고 있을까.

루이뷔통이나 에르메스 같은 남의 나라 장인들의 작품은 어마어마한 높은 가격을 주고 품격 있게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장인들의 작품은.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얼마 전부터 나는 누진다초점렌즈 브랜드인 '바리락스'와 함께 '장인 후원 캠페인'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 이 소식을 듣고 참 의아했었다.

누진다초점렌즈 회사가 대한민국에서 크게 주목받지도 못하는 장인들을 후원한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이러한 활동을 하고자 하는 기업이 국내 기업이 아닌 프랑스에 본사를 둔 외국 기업이라는 것도 신기했다.

나의 캠페인 참여 이유는 처음에는 아주 소박했다. 안경업계의 모임이니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업계의 새로운 정보도 얻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남들이 하는 좋은 일에 그저 발이나 조금 담가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장인 후원 캠페인' 모임을 통해 나는 우리나라에는 문화재보호법으로 보호받는 인간문화재 외에도 우리 사회가 보지 못하는 소외된 장인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분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인장부문 1호 명장 최병훈 장인은 1976년 인장업을 시작해 40여년 동안 인장을 연구하고 평생을 인장만을 고집해온 진정한 외길 장인이지만 그에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40년을 외길을 걸어왔지만 작품활동만으로는 생활을 할 수가 없어 인장업도 함께 겸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문화가 보편화되고 사인문화에 익숙해짐에 따라 인감제도의 폐지론까지 등장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최병훈 선생님이 앞으로 작품활동을 편안하게 하실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그분의 시야를 체크하고 검안해 눈을 지켜드릴 것이다. 또한 작품전시회를 열어 그분의 작품이 루이뷔통이나 에르메스처럼 언젠가는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가고 싶다.

나처럼 바쁜 일상에 쫓겨 정말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오던 우리 안경사들이 이번 장인 후원 캠페인을 함께 하기 위해 모였다.

우리 후원 모임에는 다양한 동료와 선배, 후배님들이 계시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서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보호해야 할 장인이지만 사회의 관심에서 벗어난 명장을 함께 찾고, 우리가 그분들을 지켜드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논의한다. 그리고 장인들의 눈을 밝혀줄 생각에 가슴이 뛴다.

이번 캠페인에 동참하며 나는 내 눈이, 내 시력이 좋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소중한 분들을, 예전에는 안 보이던 우리 사회의 정(情)이 이제는 또렷하게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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