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의 영화in> 배우 진구 "'모비딕' 속 윤혁도 또 다른 나"

2011-06-1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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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그린 영화 '모비딕' 에서 사건의 열쇠 쥔 '윤혁' 열연

(아주경제 김재범 기자) 인터뷰 장소인 카페에 들어섰다. 먼저 도착해 있던 진구는 피곤한 듯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쪽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단잠을 깨우기가 미안해 잠시 그대로 두기로 했다. 영화 ‘모비딕’ 속에 그가 맡은 윤혁이란 인물도 피곤했을 터다. 어딘지 어둡고 유약한 분위기의 윤혁. 자신을 옥죄어 오는 검은 세력의 추적에 한없이 도망만 다니던 윤혁의 헐떡임과 눈을 감고 있는 진구의 모습이 아주 잠깐 오버랩됐다.

사실 진구에 대한 첫인상이자 선입견은 그늘이었다. 그가 지금 것 맡아온 배역에 대한 잔상이 큰 이유다. ‘비열한 거리’와 ‘달콤한 인생’ 속 조폭부터 ‘마더’에서의 동네 건달, ‘트럭’의 사이코패스, 그리고 이번 '모비딕'의 도망자까지. 물론 그의 필모그래피 중 극히 일부다. 하지만 그만큼 강렬한 연기였기에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의 아우라를 느끼는 듯 했다. 아직까지 자신의 어두운 면에만 여러 감독들이 주목하는 것 같다며 못내 아쉬워한다. 그러나 선입견은 말 그대로 선입견이다. 배우 진구와의 만남은 근래 그 어떤 시간보다도 유쾌했다.



-출연작을 살펴보면 주로 어두운 역할이 많다.

“아직까지 내가 선택하기보단 선택 받는 입장이다. 강한 역이나 어두운 역에 대한 개인적 취향은 없는데 내 연기적 운이 아직은 그 쪽에 있는 것 같다.”

-진구가 풍기는 아우라가 어둡기 때문일까.

“누구에게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하지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님들 대부분이 아직까지는 내게서 밝은 쪽보다는 어두운 쪽을 많이 보려 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개인 취향은 전혀 없다.(웃음)”

-개인적으로 ‘모비딕’ 캐릭터 중 윤혁이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군대를 헌병대에서 복무했다. 비밀스런 문제와 사건 사고 또는 부대원들만 알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했다. 윤혁이가 엄청난 음모를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단 감정이 이해가 됐다. 누구나 지켜야 할 비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며 윤혁이란 인물을 만들어갔다.”

-윤혁은 상당히 어두운 인물이다. 촬영 뒤 후유증도 컸을 텐데.

“작품이 끝난 뒤 후유증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내가 연기한 모든 극중 배역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맡을 때마다 나를 버리고 다른 내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각각의 배역 속에서 나와 닮은 점을 찾아 나와 배역간의 거리를 좁혀가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왔다. 예전의 기억 속에서 배역과의 닮은 점을 찾아 기억을 부풀리는 방식이다. 만약 후유증이 있다면 32년동안 살아오면서 내 속 어딘가에 있을 후유증이 아닐까.”

-진구에게 연기란 추억을 되살리는 작업인가.

“굳이 설명하면 그렇다. 윤혁을 연기 할 때는 안 좋았던 기억을 많이 떠올렸다. 자신을 그 배역에 맞추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나는 그 배역에 나를 맞춘다. 만약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나 행동들은 간접 자료나 체험을 통해 찾으려 한다. 내게 연기란 맞춰가기다.”

-듣기에 따라선 연기를 참 쉽게 하는 스타일 같다.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내가 시나리오를 보면 첫 번째로 고민하는 부분이 ‘진구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아무리 역할이 크고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없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 만약 내가 할 수 없는 역에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면 관객이나 나 스스로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억지스런 연기는 분명히 눈에 보이고 결국에는 탈이 난다.”

-‘모비딕’ 속 윤혁에 대한 기억도 어딘가에 있었나.

“영화에서 윤혁은 약자고 쫓는 자들은 힘을 가진 강자들이다. 잡히면 그냥 죽는다. 때문에 정말 죽기 살기로 도망만 다녔다. 대사도 몇 마디 없지 않은가. 내 기억 어딘가에 윤혁과 같은 절박함이나 절실함 또는 생명에 대한 위협을 느꼈던 기억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적이 있는 것 같다.”



-지금 어딘가에도 윤혁처럼 쫓기는 사람이 있을까.

“글쎄다. 되게 위험한 발언이 될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로 공상을 좋아해서 내 머릿속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주도 있고 외계인도 있다. 동문서답인데 그 안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달라.(웃음)”

-음모론이란 소재는 분명 매력적이다. 스스로도 그랬나.

“소재에 대한 매력은 솔직히 없었다. 정말 어려운 시나리오였다. 보통 시나리오를 보면 배우들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데, 모비딕은 정말 어떤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음모에 대한 시작과 끝도 불분명했고, 사람들의 관계도 너무 복잡했다. 그런데 윤혁이란 인물 만큼은 정말 간단했다. 그런 복잡한 구조 속에서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인물을 연기한다는 생각을 하자 색다른 재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무언가 줄듯 말듯 한 극중 윤혁의 태도가 참 얄미웠다.

“당초 감독님이 원한 윤혁의 모습은 비밀스러움이었다. 하지만 내가 연기한 윤혁은 굉장히 비겁하고 연약한 모습이다. 내 속에도 분명 그런 모습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 속 기자회견 장면은 아쉬움이 컸다. 속 시원히 밝혔더라면 좋았을 텐데.

“영화에선 없지만 시나리오에선 대사도 있었다. 하지만 대사라는 게 ‘저의 이름은’ ‘윤혁입니다’ 이게 다였다. 시나리오를 보니깐 그 장면만 한 이틀 정도 찍을 것 같더라. 그래서 감독님께 대사 좀 늘려 달라 졸랐다. 그랬더니 그 장면을 찍는 날 당일 아침에 A4용지 한 장에 빽빽이 적은 대사를 건네 주셨다. 하지만 영화 전체 흐름상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셨는지 본편에선 편집하셨더라. 많이 아쉽다.”

-‘마더’ ‘혈투’ ‘트럭’ 같은 영화를 보면 파이터 기질이 다분하던데.

“영화일 뿐이지 현실에서도 그러면 되나. 정말 그런 점은 없다. 공인인데 그러면 되겠나. 물론 남자로서의 어느 정도 그런 기질이 조금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배우 생활을 하면서 자제력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정말 어릴 적에는 싸움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전혀 없다. 다만 내 안에 있을지 모를 그런 기질을 표출할 수 있는 배역을 맡다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 ‘혈투’때는 그런 기질이 너무 흘러 넘쳤다.

“그때 느낌을 생각하면 지금도 짜릿하다. 당시 기억을 설명하면 ‘사람들아 내가 이런 부분이 있는 줄 몰랐지. 내가 촬영장에서 장난만 치는 어린애로만 봤지’ 이런 생각으로 했던 것 같다. 내가 이런 생각으로 강하게 받아치자 상대역이던 (박)희순이 형이 ‘어쭈 이놈봐라’하며 다시 받아치는 소리가 정말 귀에 들릴 정도혔다. 이번 ‘모비딕’에선 정민 선배와 여관방 신 촬영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톱스타급의 배우들과 정말 많이 작품을 했다.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실력인가.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포스터 촬영 때 사진작가분이 그러더라. ‘누구와 붙여도 다른 그림이 나와 재미가 있다’. 배우한테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 아닌가. 감독님들도 대부분이 그런 생각으로 나를 써주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진구와 원빈, 진구와 조인성, 진구와 황정민. 모두 쉽게 납득하기 힘든 그림인데, 해보니 되지 않았나. 모든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진구가 머리를 깎고 나오는 영화는 성공한단 속설이 있다.

“내가 미니홈피에 모비딕 첫 촬영 때 모습이 담긴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모비딕 캐스팅 후 머리 자르고 찍은 첫 사진이다. 올릴 말이 없어서 나도 질문과 같은 글을 올렸다. 실제 머리를 자르고 나온 영화 모두 잘됐다. 비열한 거리, 마더, 모비딕까지 성공하면 일종의 성공 징크스가 생기게 되는 건가. 쭉 이어지길 바란다. 물론 흥행에 대한 관심이나 성적 등은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다.”

-뮤지컬이 차기작이다. 좀 의외인데.

“내가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출연을 결정한 것뿐이다. 시기적으로도 ‘모비딕’ 촬영이 끝난 뒤 들어온 역할이라 결정했다. 첫 뮤지컬이라 걱정되지만 기대도 크다. 9월쯤에는 영화나 드라마 가운데 출연하게 될 것 같다. 어떤 기회든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 많은 출연제의 부탁드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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