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영화 왜?> 영화 '풍산개'가 담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2011-06-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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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재범 기자)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건 도가 지나친 경우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불과 3시간에 오고가는 남자가 있다. 비무장지대를 동네 운동장 뜀박질 하듯 뛰어다닌다. 휴전선을 넘나드는 데 필요한 것은 터무니없이 긴 장대 하나면 충분하다. 영화가 상상력을 기반에 둔 영상 언어의 결정체라지만 표현적 비약이 선을 넘어버렸다. 그런데 묘한 끌림이 있다. 꼭 이렇게 됐으면 한다. 아니 그런 남자가 어딘가에서 실향민들의 아픔과 간절한 바람을 북녘땅 가족들에게 전해주길 바란다. 영화 ‘풍산개’가 가진 공감의 힘이다.

‘풍산개’는 기본적으로 갈라진 대한민국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에겐 이야기적 끄덕임을 조종할 만한 영화다. 그 만큼 누구나 바라는 간절함이 묘한 쾌감으로 관통하며 호소력을 더한다.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맡은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그를 부를 수 있는 단어는 풍산개란 북한산 담배다. 극중 윤계상이 맡은 주인공이 즐겨 피우는 담배다. 이름도 없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영화 끝까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외마디 비명이 전부다. 남과 북을 오가는 어디에도 섞일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에게 이름도 대사도 없다.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남자는 남과 북 실향민들의 메신저를 자처하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인한다. 가끔씩 눈빛 속에 담긴 처연함이 스크린에 가득차지만 그 이유는 알 길이 없다. 그렇게 조용히 세상을 살던 남자에게 사건이 벌어진다.



국정원으로부터 남한으로 귀순한 북한 고위층 간부의 여자 인옥(김규리)을 데려오라는 요청을 받은 것. 언제나처럼 3시간 뒤 그는 믿기지 않게 여자를 남한 땅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당한 대가가 아닌 창살 넘어 감옥행. 이어 국정원과 북한 간첩단 양측의 추적을 받으며 남자는 만신창이가 된다. 이후 얘기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남자의 분노가 폭발한다.

김기덕 감독 시나리오답게, 인물간의 감정 충돌이 일으키는 파열음은 상당하다. 남자가 인옥(김규리) 때문에 갖게 된 새로운 감정, 귀순한 북한 고위층 간부가 느끼는 질투심과 국정원 직원과의 기싸움 등은 영화 속 긴장의 끈을 바짝 당긴다.

특히 주인공 남자를 연기한 윤계상은 실룩거리는 눈썹과 묘한 입주름, 알 수 없는 슬픔을 담은 눈빛으로 영화 전체의 흐름을 충실히 이끈다. 남한 국정원과 북한 간첩단의 모진 고문에도 끝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쏘아붙이는 얼굴에는 분노보단 영화 전반의 정서인 슬픔이 서려있다. 마치 서로를 물고 헐뜯는 철장 속 두 마리 개를 바라보는 처연한 눈빛과도 같다.
 


남자가 담아낸 눈빛 속 처연함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선 고스란히 관객들에게로 이입된다. 서로를 믿지 못한 채 아귀다툼을 벌이는 남북 요원들의 모습을 지금의 남북 대치 상황으로 비꼬는 블랙코미디로 감독은 재치있게 녹여냈다.

더불어 영화 말미에 손과 발이 묶인 채 서로의 입을 찾아 꿈틀거리는 남자와 인옥의 키스신은 실향민들이 느끼는 간절한 바람에 대한 호소처럼 들린다.



연출을 맡은 전재홍 감독은 2007년 장편 데뷔작 ‘아름답다’로 이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도빌 아시아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후쿠오카 아시아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강렬한 영상미로 ‘제2의 김기덕’으로 불리는 전 감독은 이번 ‘풍산개’에서도 ‘김기덕 사단’에 걸맞는 결과물을 보여줬다. 하지만 스스로의 색깔보단 대중들에게 김기덕스러움을 강조한 스토리와 표현방식이 못내 아쉬움을 자아낸다.

상식을 파괴한 상상력과 메시지, 장르를 넘나드는 코드 전계도 강점이지만,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 김 감독의 작품임을 고려할 때, 해외 팬들이 남북 분단에 얽힌 정서적 이해도를 도울 장치도 부족한게 흠이다.

제작비 2억 원의 초저예산 영화로, 스태프와 배우 모두가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개봉은 오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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