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포브스 선정 2011 대만 최고 부호의 영예를 얻은 왕쉐훙(王雪紅) HTC 회장은 '타이완(臺灣)의 정주영'으로 통하는 타이완 플라스틱 그룹 포모사 故 왕융칭(王永慶) 회장과 그의 둘째 부인 양차오(楊橋)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자수성가형 아버지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던 왕쉐훙은 두려움을 모르는 도전정신의 소유자였다. 왕쉐홍은 고교졸업후 미국에 건너가 유태인 집에서 하숙하며 고생스런 유학생활을 보낸다.
유학시절 그녀는 도서관과 숙소에서 루쉰 등을 읽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왕쉐훙의 당시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왕쉐훙은 교내 각종 음악경연대회에 참가했고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버클리대학의 작곡반에 들어간다. 하지만 쟁쟁한 실력의 친구들을 보며 왕쉐훙은 음악의 ‘한계’를 직감했다.
왕 회장은 이 때부터 경영과 경제에 눈을 돌렸다. 1981년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그녀는 둘째 언니와 형부가 경영하던 PC제조업체 다중(大衆)에 들어가 해외사업부를 맡는다.
그러나 막 교문을 벗어나 경험이 부족했던 왕쉐훙은 70만달러를 사기 당한다. 잃어버린 돈을 찾아 절치부심 스페인까지 쫓아가지만 6개월간의 고생에도 불구, 그녀는 빈손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자신 때문에 언니와 형부가 피해를 보게 되자 왕쉐훙은 회사에서 나온다.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왕쉐훙은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 하이테크놀러지 분야에서 길을 찾는다.
1988년, 왕 회장은 500만 위안(한화 약 8억 3000만원)을 들여 파산직전의 직접회로(IC) 제조업체 웨이성(威盛, VIA)을 인수하며 IT업계에 뛰어든다.
1994년, CPU업계 거물인 인텔이 타이완에 진출하면서 그녀는 또 한번 ‘좌절’에 부딪친다. ‘새우와 고래 싸움’이라는 주변의 냉소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지만 왕세훙은 ‘민족기업’을 내세워 타이완 국민의 ‘민심’을 자극, 인텔과의 전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갔다.
웨이성은 인텔의 뒤를 이어 IC 및 칩 생산 세계 2위 업체로 부상했고 97년에는 휴대폰 위탁생산업체인 훙다(宏達, HTC)를 창립한다.
이후 2006년 영문 브랜드 HTC를 출범하며 PC, LCD, 태블릿 PC 등 IT제품을 출시하는 등 글로벌 IT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HTC는 2007년 미국의 비지니스 위크(Business Week)에 의해 아시아 하이테크 기업에서 3위, 2006년에는 글로벌 테크기업에서 3위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 등의 마음을 사로잡은 왕쉐훙은 자신의 성공비결에 대해 ‘남성경영인 덕분’이라고 말한다.
여성 기업인인 왕쉐훙은 IC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남성 고수들을 영입해 회사를 맡겼다. 남편 천원치(陳文琦)와 린즈무(林子牧)에게 연구개발과 전략·기획을 맡겼고, 업계에서는 그녀를 비롯한 세사람을 가리켜 ‘3인의 검객(三劍客)’라고 부른다.
2010년, 추월대상으로 스티브 잡스를 지목한 왕쉐훙은 총 자산 88억 달러로 경쟁상대인 훙하이(鴻海) 그룹 회장을 제치고 대만 부호 1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