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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류융하오, 류융싱, 류융메이, 류융옌. |
(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류융옌(劉永言) 다루시왕그룹(大陸希望集團) 회장,류융싱(劉永行) 둥팡시왕그룹(東方) 회장,류융메이(劉永美) 화시시왕그룹(華西) 회장, 류융하오(劉永好) 신시시왕그룹(新) 회장은 중국 내 최고 부호 가족으로 꼽힌다.
사형제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조합하면 언행이 아름답다는 뜻의 중국말 '언행미호(言行美好)'가 된다.
쓰촨(四川)성 신진(新津) 현에서 태어난 사형제의 유년시절은 유복하지 못했다. 셋째인 류융메이는 두살이 되던 해 이웃의 천(陳)씨 집으로 입양이 되어 천위신(陳育新)으로 개명을 하기도 했다.
막내 류융하오가 28세가 되던 1979년엔 개혁개방과 함께 농촌경제건설이 본격화했다. 이때 공무원들이 사업에 투신하는 '샤하이(下海) 바람'도 거세게 몰아쳤다.
당시 4형제는 대학 졸업후 쓰촨성 지방 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중이었다. 류씨 형제들은 형제회의 끝에 ‘철밥그릇’을 포기하고 함께 농업에 투신하기로 뜻을 모은다.
시계며 자전거 등 돈이 될만한 것은 모두 내다 팔아 1000위안(지금 10만 위안 상당)을 마련한 형제들은 셋째의 새 이름을 따 ‘위신우량농장(育新良種場)’을 만든다.
하지만 형제들은 사업 초기에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 배송 경험 부족 및 화재사고로 재산의 전부인 닭과 병아리를 잃어 파산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류씨 형제들은 새벽 4시에 기상, 20㎞나 떨어진 거래처에 직접 자전거로 병아리를 배송하는 등 무진 애를 쓴 끝에 결국 10만 위안의 거금을 모은다.
4형제는 각자 맡은 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경영 수완이 남다른 둘째, 머리가 비상했던 셋째가 아이디어를 내면 큰 형 융옌은 최종 결정을 내렸고 넷째는 형들의 지원군이 되었다.
낮은 기술력, 높은 코스트, 비효율적인 경영관리 극복을 최대 과제로 꼽은 형제들은 직접 품종 개발에 참여, 산란율 80%가 넘는 저가의 메추라기와 고급 사료 생산에 성공한다. 또한 메추라기 분뇨를 이용한 돼지 사육, 돼지 분뇨를 이용한 어류 사육, 어류 배설물을 이용한 메추라기 사육과 같은 ‘생태순환형 사육법’을 개발함으로써 성공의 토대를 쌓는다.
80년대, 돼지고기 수요가 급증하는 데서 사료 시장의 잠재력을 감지한 4형제는 88년 시왕사료회사를 설립, 농업분야 전문 기업으로 자리를 굳힌다.
89년, 시왕이 자체개발한 시왕표 1호 사료가 세상에 나온 뒤 시왕사료는 그야말로 '대박'을 치며 해외기업이 독점하고 있던 사료시장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사료전문 업체이자 중국 최초 민영기업으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던 1995년. 형제들은 가족식 경영의 한계와 개인의 목표 실현을 위해 자산 정리를 하고 ‘솔로’를 선언한다. 형제들은 사료 등 농업을 중심으로 각자 에너지, 광산, 부동산, 투자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4형제는 1995년과 2001년 포브스 선정 중국 최고 부호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 중 둘째 류융싱은 2009년 자산 30억 위안(한화 야 4991억)으로 신차이푸(新財富)에 의해 2011년 상하이 최고 부호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