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흥망성쇠의 리트머스 '사옥'

2011-05-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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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병용 기자) 사옥은 기업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불린다.

국내 기업들은 사업을 다각도로 확장,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때문에 그룹 오너들은 계열사에 대한 지휘 및 통제, 경영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옥을 필요로 한다.

사옥은 이런 이유로 기업의 운명과 같은 궤적을 그린다. 특히 대우그룹의 사례처럼 사옥은 해당기업의 정신을 대표한다. 따라서 사옥 매각은 기업 정신의 소멸을 의미하고 있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한해운 사옥이(서울 삼성동) 지난 16일 하나은행이 실시한 2차 공매에서 447억에 매각됐다. 감정가격인 580억원에 비해 낮은 가격. 이번 매각으로 대한해운의 ‘삼성동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사옥을 매각하기로 한 것. 대한해운은 매출확대를 위한 과도한 용선과 시황폭락을 견디지 못하고 1월 25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대부분의 해운업체들이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대한해운은 2008년 11월 서울 삼성동에 사옥을 준공했다. ‘삼성동 시대’의 시작이었다. 신사옥 인근에는 포스코·한국전력 등 대형 화주들이 밀집해 있어 마케팅 측면에서도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리먼쇼크’로 시황이 급속하게 악화되면서 대한해운은 자금난에 시달렸다. 결국 대한해운은 신사옥 입주 3년 만에 채권단에 긴급구조 신호를 보내는 처지로 전락했다.

시황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멘트 및 건설업체들도 사옥 처분에 나섰다.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이 진행 중인 현대시멘트는 올 초부터 사옥인 성우빌딩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14층 규모인 성우빌딩은 현대시멘트가 지난 1990년부터 본사로 사용해 왔다.

동부건설은 지난해 10월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동부금융센터 일부 층을 계열사인 동부화재해상보험에 매각해 358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코오롱건설도 사옥 일부를 지주회사에 매각,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다.

반면 SK그룹은 본사를 되찾은 경우이다.

SK는 지난 2월 서린동 사옥인수를 위해 국민연금관리공단과 총 5500억원 규모의 부동산펀드를 구성하기로 하고, 건물소유주인 메릴린치 컨소시엄과 소유권 이전에 합의했다. 인천정유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005년 메릴린치 컨소시엄에 매각한지 5년여 만이다.

지하 7층, 지상 35층 규모인 서린동 사옥은 최태원 SK 회장의 선친인 고 최종현 회장이 여의도와 을지로 등에 흩어져있던 계열사들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해 생전 의욕적으로 건립을 추진한 건물이다.

일종의 기념관 같은 건물이다. 실제 서린동 사옥 35층에는 최종건 1대 회장과 최종현 2대 회장의 흉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기업의 색채가 강한 본사 사옥을 가지고 있다”며 최상층 창문이 아치 형태로 된 현대의 계동사옥, 붉은 화강암으로 외벽을 통일한 삼성 빌딩, LG의 트윈타워 등을 꼽았다.

그는 이어 “본사 사옥은 ‘종가’와 같이 그 기업의 권위를 상징한다”며 “사옥을 매각하는 것은 기업의 정신이 해체되는 것과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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