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한 인수 후보로 떠오른 산은금융지주는 자금 마련 등 구체적인 계획 수립에 나섰다. 또 인수 후에도 한동안 2개 은행 체제를 유지하는 ‘투뱅크(Two bank)’ 전략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형 국책은행 출현에 대한 우려와 함께 특혜시비까지 제기되고 있어 인수 작업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 우리금융 인수조건 완화, 산은 카드는 ‘글쎄’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을 개정해 금융지주회사가 다른 금융지주회사를 인수하기 위한 최소 매입 지분 조건을 95%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완화하는 방안이 사실상 확정됐다.
금융권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공자위가 시행령을 바꾸는 내용으로 발표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17일 회의는 형식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이럴 경우 KB·신한·산은금융지주 등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지만 KB금융과 신한금융은 인수 의지가 강하지 않다.
어윤대 회장은 지난 14일 내부 행사에 참석한 후 기자와 만나 “(우리금융 민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고 또 잘 돼야 한다”면서도 KB금융의 인수전 참여를 묻는 질문에는 “모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최근 내홍을 겪으면서 조직 추스리기가 시급한 신한금융도 대형 인수합병(M&A) 이슈에 발을 담그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산은금융은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내부 유보금 활용, 회사채 발행 등을 검토 중이다.
특히 현재 100%인 정부 지분율을 80%대로 낮추기 위해 우선주와 CB를 9000만주 내외로 발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산은금융이 인수에 성공할 지 여부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산은금융과 우리금융의 결합은 초대형 국책은행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비판이 거세기 때문이다.
이는 민영화 취지에도 역행하고 공적자금 회수에도 불리하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산은금융과 우리금융이 합쳐도 시너지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산은의 대출 포트폴리오를 보면 경영 상황이 안 좋은 기업이 상당 수이며 순이자마진(NIM)도 시중은행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가 다변화돼 산은의 수익 모델은 갈수록 협소해지고 있다”며 “결국 이번 인수는 산은에만 유리하고 우리금융에는 득이 될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자위 내부에서도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대형 금융회사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준 완화는 필요하지만 그 수혜자가 산은금융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 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 산은-우리 “한지붕 두가족 되나”
이같은 여론에 가장 민감한 것은 산은금융이다.
실제로 산은금융 내에서도 인력 및 영업 경쟁력 등에서 열위를 보이고 있는 만큼 우리금융을 인수하더라도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의 임직원 수는 1만4300여명으로 산업은행(2300명)보다 6~7배 많다. 국민은행에 인수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장기신용은행의 추억을 떠올리는 산은금융 직원들이 많은 이유다.
산은금융은 우리금융을 인수한 후 당분간 ‘투뱅크’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은금융이 눈여겨 보고 있는 벤치마킹 모델은 일본의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이다.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은 지난 2002년 후지은행과 다이이치강교은행, 일본산업은행이 합병해 출범했다.
이후 개인금융을 담당하는 미즈호은행과 기업금융 분야에 특화된 미즈호 코퍼레이트 은행을 따로 운영 중이다.
산은금융 관계자는 “개인금융 등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자기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일본 미즈호파이낸셜그룹처럼 개인금융과 기업금융을 나눠 운영하는 사례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산은금융에 피인수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마땅한 대안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부실 금융기관이 아닌 데도 다른 금융지주회사에 피인수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금융당국도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어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지난해 말 자체 민영화 방안이 좌초된 경험이 있는 데다 대등합병 요구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라며 “정부의 결정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