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수행한 정재철 작가가 12일 김종영미술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활짝 웃고 있다.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삶이 예술이고 여행이 미술이다." 이 생각은 실행으로 옮겨졌다. 2004년 서울에서 영국 런던을 종착지로 7년간 무모한 여행이 시작했다. 그것도 철거되고, 버려진, 쓰레기 폐현수막을 들고 떠났다.
일명, '실크로드 프로젝트'을 감행한 작가 정재철은 7년간 중국 인도 네팔 파키스탄 이란으로 여행하며 폐현수막을 현지인에 나눠줬다.
사원에, 자전거에, 시장에, 좌판에, 광장에 햇빛가리개로 만들어져 태극기가 휘날리듯 나부꼈다.
나이트클럽 현수막은 이스탄불 이란등에서 멋진 햇빛가리개로 변신했다. |
한류열풍덕도 보았다. 글자 내용은 아무의미가 없었다. 한글이 아름답다는 반응과, 초록, 노랑, 파랑 빨강, 강렬한 색감의 현수막은 실크로드에서 장식천으로 실용만점으로 활용됐다.
"20004년 서초구청과 고양덕양구청에서 철거한 폐현수막 2000매를 수집했고 현수막을 깨끗히 빨아 비닐에 포장하는것에서부터 퍼포먼스가 시작됐죠. 1차로 인도 네팔에 도착 현지인들에게 전달했고, 그들이 이 현수막을 어떻게 사용할지 궁금했지요. 6개월정도 지난후 다시 그 지역을 여행하며 폐현수막의 사용형태를 확인했는데 햇빛가리개로 옷으로 모자등으로 실생활에 재활용된 폐현수막을 보면서 바로, 일상이 미술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채절의 미술프로젝트'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13일부터 열린다.
우리나라에서 정보전달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바로 폐기되던 현수막의 놀라운 변신을 확인할수 있다.
디자인과 재료에 있어 '조악한 미술품'에 불과하던 현수막이 각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여행루트를 따라 현지민들과 함께 어떻게 재활용하여 새로운 사물로, 형태로 만들어져 사용되는지 만나 볼수 있다.
전시장은 마치 잔칫날같은 분위기다. 각양각색 현수막이 실크로드풍으로 재탄생돼 전시장 천장에서 화려함을 뽐낸다.
인도 네팔등 현지에서 폐현수막을 현지인들에게 나눠주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전시장에서 상영된다. |
사진, 비디오 녹취, 그리고 결과물로서 선보인 이 전시는 7년간 여행의 기록이고 재수집이고 현대미술에 대한 환기다.
더욱이 이 전시는 조각전문 미술관인 김종영미술관이 선정한 '2011 오늘의 작가'전이다.
기록과 재수집의 결과물인 이 전시를 조각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들은 조각일까?.
최열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폐현수막이)문화적 중립이 이루어진 사물로 거듭나고 있는 정재철의 작업은 재활용의 의미를 보다 넓게 확장하여 일상적인 일들이 창조적 활동으로 승화되게 하려는 의도"라며 "전시장 밖의 일상적 삶의 공간을 조각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보다 적극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라는 점에서 사회적 조각"이라고 명명했다.
옷으로 변신한 현수막들. 전시장에 소개된 것들은 현지에서 실제 사용되는 것들이다. |
전통적 조각이 갖는 인위성과 자연성간의 간극에 고민하다 2004년부터 실천적 방법으로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길위에서 이뤄진 과정의 흔적을 제시하고 있는 이 전시는 마치 불교의 연기론과도 상통한다.
개체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작용과 반작용, 또한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문화적 혼융과정, 그리고 중첩된 시간성의 문제등 추상적인 문제를 조형언어로 담아낸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작업 기록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과정이 빚어낸 흔적, '길위의 예술'이라는 물꼬를 튼 작가의 7년간 수행은 일상이 예술, '여행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전시는 6월 16일까지.(02)3217-6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