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복지국가의 효시이자 롤모델로 추앙받던 영국이 이처럼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간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295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무상복지’ 논란으로 불거진 우리나라의 ‘재정 포퓰리즘’기조에 더욱 눈이 간다. 복지정책의 꽃으로 불리는 영국을 포함한 선진국들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우리나라의 복지정책.
물론 역사와 전통이 있는 유럽식 복지와 절대적으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복지정책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고, 중·장기적인 청사진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지겨울법도 하지만 매번 선거철을 앞두고 거론되는 복지논쟁은 ‘저소득층 지원’이라는 양의 탈을 쓰고 정치판을 달구고 있다. 한나라당 원대대표에 선임된 황우여 의원의 ‘감세철회’ 발언은 이명박 정부에 사실상 반기를 들면서 복지재정 증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감세 철회를 통해 거둬들인 10조원의 예산을 대학 등록금 인하와 보육비 등에 쓰자는 것.
이처럼 ‘복지재정 확대’ 문제가 내년 대선 전까지 수차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쟁을 예고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제 복지정책이 선거때마다 방향성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복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부터 정립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성철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은 “복지에 대한 명확한 철학적 인식 없이 정책이 제안되다보니 상황과 여건이 변하면 복지정책도 이리저리 흔들리기 마련”이라며 “복지에 대한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논쟁부터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사회여건에 따라 복지개념을 다르게 정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사실 우리는 복지제도를 ‘공공부조’ 수급 정도의 수동형 개념으로 생각해 왔었지만 이제 공공부문 등 삶의 전반에 걸쳐 모든 영역에 해당하는 ‘능동형 개념’으로 바뀌었다”며 “기존보다 주체별로 아주 다양한 욕구를 포괄적으로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복지정책은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정책에서 보편적 프로그램인지 선별적 프로그램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개발정책연구원(KDI)은 '복지정책 조준의 개념과 필요성'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복지정책 하나하나의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무상급식을 예로 들어, 무상급식은 원래 급식비 납부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보편적 복지를 의미하는데 이른바‘무상급식 논란’이 불거지면서 급식혜택의 대상을 넓히자는 내용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즉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구분에 대한 논의보다는 개별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개념을 정확하게 검토하고 타깃을 구체화하는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중·장기적인 복지정책의 청사진을 마련할 싱크탱크가 부재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사회복지 관련 민간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뇌집단인 KDI의 경우도 복지정책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연구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됐다"며 "연구기관간 연계를 통해 복지정책에 대한 논의를 정례화하고 정부가 적극 나서서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