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1월 취임한 스튜어트 걸리버 HSBC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콘퍼런스에서 "HSBC의 광고 슬로건인 '세계 속의 지역은행'에 대한 오해가 있다"며 "마케팅 문구를 HSBC의 전략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다 하려고 애써왔지만, 더 이상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며 "우리가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HSBC의 한 고위 임원은 "이제는 HSBC의 글로벌뱅크 모델이 끝났다고 보면 된다"며 "세계 어디서나 투자은행과 기업금융, 소매금융 사업을 모두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거들었다.
HSBC는 '세계 속의 지역은행'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현지화를 통해 세계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글로벌 은행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영국과 홍콩을 제외한 해외 부문 실적은 급격히 악화됐다.
걸리버에 따르면 HSBC가 진출한 87개국에서 두드러진 실적을 내고 있는 곳은 22개 소매금융사업부와 18개 프라이빗뱅킹(PB)사업부뿐이다. 소매금융 및 PB사업을 벌이고 있는 전 세계 61개 시장 가운데 절반이 넘는 39곳에서 지난해 발생한 세전 손실액만 2억4400만 달러에 달했다.
HSBC 경영진은 이날 '세계 속의 지역은행'이라는 슬로건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시킬 계획으로 결코 폐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걸리버는 이날 러시아를 비롯한 10여개 소매금융시장에서 철수하고 기업금융과 프라이빗뱅킹(PB) 부문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미국 제조업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며, 신용카드 사업부와 지점망에 대한 전략을 재검토해 HSBC가 미국에서 기업금융 전문 은행(corporate bank)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걸리버는 이를 통해 향후 2~3년간 회사 전체 비용의 8%에 상당하는 25억~35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고, 지난해 9.5%였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12~15%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날 런던증시에서 HSBC 주가가 1.5% 빠진 게 이를 방증한다. 애널리스트들은 걸리버가 제시한 구조조정안이 그다지 급진적이지 않은 데다 구체성도 결여돼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