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시대 핵심100인]<12>링지화-①승진1순위, 후진타오의 막후실세

2011-05-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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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 조용성 특파원) 중국 공산당은 5년에 한번씩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개최한다. 2012년 10월에 열릴 제18대 당대회에서 전국대표들은 200여명의 중앙위원을 선출한다. 이들은 주로 공산당 주요간부와 국무원 고위관료, 인민해방군 최고위급 장성, 지방정부 지도자들이며, 중앙위원회를 구성한다. 13억인구의 중국에서 200명안에 들어가기란 여간 여려운 일이 아니다.

중앙위원회는 정치국위원 25명과 상무위원 9명을 선출하며 ‘정치국 상무위원-정치국위원-중앙위원-전국대표’의 구조를 완성한다. 보수적인 공산당에서 중앙위원이 정치국위원을 뛰어넘어 곧바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상임부총리가 중앙위원에서 정치국위원을 뛰어넘어 상무위원으로 발탁됐다. 이는 시진핑과 리커창을 차기지도자로 확정짓기 위한 인사수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같은 인사수요가 없는 한 18차 당대회에서는 중앙위원이 상무위원으로 승진하는 경우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한 명의 중앙위원을 상무위원으로 올리길 원하고 있다. 그가 바로 후주석의 그림자로 불리는 링지화(令計劃)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이다.

신구이즈(辛桂梓) 전 윈난(雲南)성 조직부장은 18차 당대회에서 상무위원으로 선출될 후보로 시진핑 국가부주석, 리커창 상임부총리, 위정성(兪正聲) 상하이(上海)시 서기, 장더장(張德江) 부총리, 리위안차오(李源朝) 중앙조직부장,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서기, 그리고 링지화 주임을 꼽기도 했다.

하지만 후 주석의 막강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링지화가 상무위원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그는 무엇보다 지방정부에서의 공직경험이 없다. 또한 공청단과 중앙판공청에서만 일해온 단조로운 이력 탓에 치적으로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다. 18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위원으로 승진하는 것은 무난해 보이지만 상무위원으로의 진입은 무리가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다. 그는 현재 리위안차오가 맡고 있는 중앙조직부장으로의 영전이 유력시되고 있다.

◆후주석 있는 곳에 링지화 있다

링지화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은 후주석의 그림자로 불린다. 링 주임은 1999년 중앙판공청 부주임을 맡은 이후 국내외 행사장에 나서는 후 주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가 나타난 장소엔 20~30분이 지나면 어김없이 후 주석이 나타난다. 그는 행사장의 안전부터 마이크의 높이가 후 주석의 키에 맞는지까지 사전에 철저히 점검한다.

중앙판공청은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직속기관으로 중국 공산당 고위 지도자의 연설문 작성과 회의 보좌 업무, 중앙정치국이 하달하는 각종 문건과 원고의 기초 및 개고(改稿)•교열 작업 등을 담당한다. 판공청 주임은 이러한 업무 속성상 당의 정책 집행과 일상 업무를 관장하는 중앙서기처 서기를 겸한다.

링지화 역시 서기처 서기를 겸하고 있으며, 현재 6명의 서기 중 서열 5번째다. 서기서 서기로는 시진핑 국가부주석, 류윈산(劉云山) 당 선전부장, 리위안차오 당 조직부장, 허융(何勇) 당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 링지화, 왕후닝(王滬寧)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다.

판공청은 이밖에 고위 지도자들의 신변 안전과 의료 등을 책임진다. 한마디로 판공청은 우리의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을 합한 기구라고 볼 수 있다.

◆출세 보증수표, 판공청 주임

공산정권 수립 이후 중앙판공청 주임 직을 지낸 인물은 모두 9명으로 양상쿤(楊尙昆) 전 국가주석, 왕둥싱(汪東興)ᆞ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 후치리(胡啓立) 전 정협부주석, 차오스(喬石) 전 전인대 위원장, 왕자오궈(王兆國) 전인대 부위원장,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 그리고 왕강(王剛) 정협 부주석 등이다.

중앙판공청 주임은 정권의 핵심부서이지만 후진타오는 집권 5년 만인 2007년 가을에야 자파 정치인인 링지화를 주임으로 앉힐 수 있었다. 후진타오 집권 초반 5년간의 중앙판공청 주임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측근인 왕강(王剛) 정치국 위원이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왕강 주임에게는 장 전 주석을 대신해 후 주석을 감시한다는 뜻의 ‘대리 감시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그는 두뇌회전이 빠르면서도 탁월한 근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진다. 하루에 잠은 서너시간 밖에 자지 않을 정도로 워커홀릭이다. 음주를 꺼리고 골프도 치지 않는다. 취미라면 탁구를 몇판 치는게 전부다. 그는 밥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오로지 근무에 전념한다. 이에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일하는 기계(工作機器)’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공청단 20년, 판공청 17년

그는 1956년 10월생으로 산시(山西)성 핑루(平陸) 출신이다. 후난(湖南)대학에서 공상(工商)관리를 전공했으며 같은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링지화는 공청단에서만 20년 남짓 근무했다. 1975년 고향인 산시(山西)성 핑루(平陸)현 공청단 위원회 간부와 부서기로 시작해 공청단 중앙선전부 이론처 부처장, 공청단 중앙서기처 판공실 주임을 거쳤으며 1995년 공청단 중앙선전부 부장을 마지막으로 중앙판공청으로 자리를 옮긴다.

링지화는 공청단에서 20년 이상 근무했지만 후 주석이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와 제1서기로 재직하던 1982~85년 후 주석과 직접 관계를 맺고 일한 적은 없다. 링지화는 1983~85년까지 중국 공청단의 산하 교육기관인 중국청년정치학원에서 정치교육을 전공하며 연수를 마쳤다. 졸업식에서야 당시 공청단 제1서기이던 후진타오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교육을 마치고 공청단 중앙선전부 이론처 부처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공청단 핵심 멤버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링 주임은 무슨 일을 시켜도 당차고 야무지게 해냈고 특히 그가 써낸 연구보고서는 상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공청단의 서기로 있던 리커창, 리위안차오, 류옌둥(劉延東) 등 후 주석의 공청단 측근들로부터 재능과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후 주석의 지근거리에서 일한 것은 1995년 중앙판공청 조사연구실 3조 책임자로 발탁되면서부터다. 그는 이후 조사연구실 조장과 부주임, 주임을 거쳐 중앙판공청 부주임에 이어 2007년 9월 중앙판공청 주임 자리를 거머쥐었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출세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도 후 주석의 후원이 큰 힘이 됐다. 또한 한잉(韓英)을 비롯해 왕자오궈(王兆國), 후 주석, 쑹더푸(宋德福), 리커창 등 공청단 중앙 제1서기 출신의 ‘5대 원로’로부터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출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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