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오베이덴(高碑店)의 공장들에는 작업장 마다 아무렇게나 생긴 굵은 통나무 토막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그냥 땔감으로 사라져 버릴 폐자재와 다름없는 이런 통나무들이 이곳에서 장인들의 손을 거쳐 고풍스러운 멋진 고가구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나무를 쪼개서 다듬는 목공들의 기술도 그렇지만 가구의 형태가 완료된 후 채색을 하고 거기에 난초와 매화, 목단꽃 나비 등을 그려 넣는 사람들의 솜씨도 정말 감탄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네요. 훌륭한 화가 같아요.”
노란색 바탕의 장농에 여러가지 색깔의 안료로 난초와 나비를 그려넣는 광경을 골똘히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을 건넸는데 작업자는 내 말을 부인하듯 고개를 저었다.
“저는 화가가 아녜요. 그냥 작업 일꾼입니다.”
“그림을 그리는데 화가가 아니라고요?”
“그저 정해진대로 색을 칠하는 단순 작업일뿐이죠. 예술이 아닌데 화가라고 할수 있나요”
그녀는 허베이 어느 시골마을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이곳에 와서 다궁( 打 工 일자리를 얻음)을 하게 됐다. 일당 35위안씩 받고 나비 장농 등 채색전의 고가구에 무늬를 그려넣는 작업을 하는데 아주 순박하면서도 생각이 꽤나 깊은 처녀였다. 그녀는 한국인 고객들이 많다고 소개한뒤 사람들이 고가구의 예쁜 무늬를 보고 좋아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해맑게 웃었다.
페달을 밟은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종아리가 뻐근하고 딱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틀째 저녁 무렵에는 허뻬이성의 제법 큰 도시 바오딩(保定)에 도착했고, 이곳 바오딩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묶게 됐다. 베이징 남쪽 허뻬이의 내륙에 위치한 바오딩은 다른 도시들 만큼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허뻬이성의 주요 도시중 하나로서 신중국 들어 파란만장한 부침을 겪은 곳이다.
이날 저녁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조선족으로서 한족 사장의 자가용 운전수로 일하는 30대 초반의 젊은이와 미리 약속을 해 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조선족 젊은이는 얼마전 큰 교통 사고를 냈는데 나는 바오딩을 지나는 길에 안부를 전하고 위로도 할겸 그를 찾은 것이다. 한족 사장의 자가용 운전수로 6년을 일해온 그는 평소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는데 어쩌다가 음주운전을 하고 행인을 치여 사망케하는 끔찍한 사고를 냈다.
“당장 일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실형을 살아야할 처지였지요.”
이 조선족 총각은 사망사고를 낸 소름끼치는 기억과 지옥 같은 악몽에서 헤어나온 경과를 얘기했다.
“유치장에 한달 정도 갖혀있는 사이에 사장님이 경찰에 진정서 내고, 유족과 합의하는 등 고생 고생 해서 저를 빼내 줬습니다.. 사건 무마를 위해 사장님께서 20만위안(4000만원)의 큰 돈을 썼다는 걸 나중에 경찰한데 들었어요. 20만위안이면 제가 10년을 벌어도 모으기 힘든 큰 돈이예요”. 그것은 고향인 지린(吉林)성 시골에 집을 한채 마련할 정도의 큰 돈 입니다.”
조선족 총각의 애기를 듣다보니 언젠가 봤던 중국 영화속에서 신뢰나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 던졌던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사랑하는 아내의 모친, 장모의 암을 치료하기 위해 살던 집까지 처분했던 중국인 친구의 따뜻한 인간애가 뇌리를 스쳤다. 그가 말하는 폼새를 살펴 보니 한족 사장이 배풀어준 인간적 배려와 호의에 대해 평생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결의를 다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