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의 진정성은?

2011-03-1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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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 미디어작가 겸 출판사 대표]

“띵똥~ 띵똥~”하고 현관의 벨이 난데없이 울린다. 인터폰수화기를 들고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누군가가 낯선 목소리로 “행복한 소식을 드리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사양합니다.”라 말하고 인터폰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이 상황을 문자 그대로만 파악한다면 나는 행복한 소식을 거절하는 매우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수화기 너머로 자전거나 현금을 주겠다고 하고, 사랑의 말씀을 드린다고 하고, 최신 휴대폰을 무료로 주겠다고 하고, 때로는 고객님을 사랑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신문을 구독하라는 말, 특정 종교 집회에 나오라는 말, 약정기간 동안 특정 요금제를 사용하라는 휴대폰 업체의 말, 해당 업체의 매상을 올려달라는 말이라는 것을 뇌 안에서 즉시 일어나는 ‘동시통역’에 의해 금방 알 수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말이 전하는 의미 그대로를 곧이곧대로 순수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다. ‘사랑과 행복을 드리는 백화점’이라는 카피를 보면서도 말 그대로 ‘사랑’과 ‘행복’을 백화점이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말로 소통하고 있으면서도 많은 경우, 그 저변에 깔린 의미를 ‘통역’해서 그기에 걸 맞는 언어를 구사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통역’에 능하지 않으면 오해나 착각이 생기기도 하고 ‘낚시질’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혹은 아예 ‘통역’기능을 상실해 말에 마취되거나 현혹되기도 하고 심지어 신봉하는 이들도 있을 지 모르겠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의 언어는 단순하고 직접적이지 않아 머리가 아프다. 날로 번창하는 테크놀러지에 부합하는 통신기기와 매체는 신속한 발전을 거듭하지만, 왠지 우리가 쓰는 말의 진정성은 기술의 발전만큼 깊이를 더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는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를 지나면서 새삼 ‘사랑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현재와 같은 복잡한 언어 환경에서 본연의 ‘사랑’을 전하는 말을 구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복잡한 머리를 가진 인간들이 이런저런 ‘통역과 계산’ 없이 담백하고 순수하게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각종 미디어와 마케팅에서 과도하게 사용되면서 나름 ‘현실의 때’도 많이 탔지만 그래도 사랑을 표현하기 가장 적합한 단어는 여전히 ‘사랑’이다. 말을 순수하게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시대에 살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들을 날려 보내고 단순하고 풋풋한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가끔 나의 애완견에게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반응은 시큰둥, 입이 찢어져라 쩍~하고 하품을 한다. 나는 그런 개가 정말 사랑스럽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동물과는 같은 언어를 공유하지 않기에 조금은 더 단순하고 명쾌하게 복잡한 끄나풀 없이 말을 건넬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도처에 넘쳐나는 친절하고 달콤한 말들은 그 빤짝이는 표면 아래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각종 미디어, 마케팅, 정치적 선전, 등의 소위 듣기 좋은 소리들의 홍수 속에서 따뜻하고 인본주의적 언어들은 난무하지만, 정작 그 뒷맛은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언어 환경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언어인식체계에 영향을 줘, 무의식적으로 언어를 대하는 의심과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벨을 누르고 ‘사랑을 전달하려고 왔다’고 한다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소통 미디어는 첨단화되지만 어찌 보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진정성은 많은 언어의 오염 속에서 점점 더 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개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는 쉬워도 같은 사람끼리는 그것이 단순하지 만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을 전하는 변함없는 표현은 마음을 담은 ‘사랑합니다’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한마디는 “텔레마케터님, 제발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말아주세요!”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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