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당 최고 260만원이나 하는 고성능 엔진톱을 만드는 독일 기업 스틸은 미국 기업들과 달리 아웃소싱도 모르고 저임금 국가로의 공장이전도 모른다. 세계적인 불황이 닥치면 종업원을 감원하기는커녕 고용을 보장하고 제품개발에 전문가들을 충원한다. 임금이 세계최고 수준인 독일에서 제조된 스틸의 고가 엔진톱은 생산량의 86%가 수출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호 특집기사 ‘독일은 어떻게 유럽의 중국이 되었나’에서 제조업 강국 독일의 성장비결을 무엇보다 스틸처럼 강한 독일 기업들에게서 찾고 있다.
독일 제조업의 등뼈를 이루는 중소기업들은 남들이 잘 주목하지 않는 부문에 특화해 왔다.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가 아니라 기계, 중장비 등 묵직한 분야에서 독일인 특유의 기술력을 쌓아 왔다.
그런 전통 위에 독일 기업들은 근년 들어 독일정부의 개혁조처들에 힘입어 산업 경쟁력을 대폭 강화했다. 그 결과 2010년 수출이 무려 18.5% 늘었다.
이러한 수출신장 덕분에 독일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더 신속하게 경기침체에서 벗어났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3.6% 성장했고, 실업률은 2007년 8.6%에서 2010년 6.9%로 개선됐다. 여타 유럽국들과는 사정이 정반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GDP 성장분이 유로존 전체의 그것에서 차지한 비중은 무려 60%였다.
그런가 하면 독일의 질주는 여타 유럽국들을 좌절시킨다. 독일의 수출엔진이 맹렬히 가동되면서 나머지 유럽 국가들이 아예 독일과 경쟁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독일 무역흑자의 80%는 여타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의 교역에서 생긴다. 브뤼셀에 있는 싱크탱크 브위겔의 선임연구원 앙드레 사피르는 "독일이 전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여타 유럽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독일은 중국과 닮은 점이 많다. 두 나라 모두 세계에 이득과 함께 불안정을 초래한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올리지만 독일보다 경쟁력이 낮은 스페인 같은 이웃 국가들은 심각한 적자에 시달린다.
많은 유로존 국가들은 독일의 수출의존형 경제 때문에 유로존의 경제적 근심이 깊어진다고 비난한다. 이는 미국이 자국 경제 회복을 가로막는 존재로 중국을 비난하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이 중국을 향해 하는 주장을 본떠 유럽 국가들은 독일에다 대고 유럽전체의 경제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독일경제를 운영해 달라고 주문한다. EU 집행위원회는 독일과 같은 흑자국들에게 EU전체를 위해 국내 소비지출을 늘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독일은 자국의 수출이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좋지 않냐고 반박한다. 독일의 수출이 늘수록 독일기업에 부품 등을 납품하는 주변국 기업들이 이득을 보지 않느냐는 것이다.
스페인, 아일랜드 같은 나라들이 빚더미 위에서 흥청망청 돈 잔치를 벌일 때 독일기업들은 연구·개발(R&D)에 돈을 쏟아 붓고 비용을 줄였다. 그러면서 채용과 해고가 더 쉽도록 고용유연성을 높였고 이에 노조가 협조했다. 이렇게 몇 년을 노력한 결과 세계고객들은 ‘독일산’이라는 딱지가 붙은 제품에 기꺼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독일은 일본과 더불어 수출에 경제를 크게 의존하는 나라가 됐다. 독일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33%에서 2010년 41%로 늘었다. 독일의 사례는 임금이 높은 선진국이 임금이 낮은 신흥국들에 맞서 어떻게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나아가 더 키울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