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석받이로 전락한 100억대 폐품
지난해 한국영화계의 최대 이슈는 단연코 나홍진 감독의 ‘황해’였다. 나홍진이 누구인가. 2008년 벽두를 강타한 ‘추격자’의 총지휘자다. 두 남자의 쫓고 쫓기는 지독한 ‘달림’ 속에 구원 받지 못한 여성의 핏빛 최후를 그려낸 영화로, 그는 일약 한국영화계 백년대계를 이끌 기대주이자 천재로까지 불렸다. 추격자 이후 한국영화계는 일종의 ‘잔혹’ 코드가 유행처럼 번지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 신인 감독의 데뷔작 한 편이 일궈낸 충격적 여파였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차기작에 대한 밑그림이 공개됐다. 전편의 지독함이 더욱 짙어진 영화란 소문만 무성했다. 그리고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황해’란 이름으로 그 위용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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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100억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황해’의 최종 스코어는 230만 안팎. 참패에 가까운 성적표다. 소문난 잔치에 정작 먹을 것은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은 결과인가.
영화의 문제점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추격자와의 변별점은 충분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발목을 잡은 꼴이 됐다. 나 감독과 두 주연배우는 개봉전과 개봉 후 추격자와 비교하는 세상을 향해 불편한 속내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들의 주장처럼 그 차이는 너무도 컸다.
먼저 ‘황해’는 강박적인 디테일에 집착한 나머지 내러티브의 디테일이 사라진 꼴이 됐다. 2시간 36분에 걸친 장대한 스케일은 구남(하정우)의 여정에만 집중한다. 영화 시작 후 한 시간이 지날 때 까지 구남의 곤궁한 삶을 보여주는 데 시간을 낭비한다. 모두 구남의 선택을 설명하기 위한 사전 소스다. 이후 면가(김윤석)에게 살인 청부를 받고 황해를 건넌 뒤에도 카메라는 구남을 떠나지 않는다. 지나치리만치 인물의 배경 설명에 시간을 낭비한다. 보는 이로선 피곤함이 몰려올 정도로 힘이 든다.
캐릭터의 격변도 도를 넘어선다. 문자 그대로 격한 변화가 몰입도는 둘째 치고 실소까지 자아낸다. 도박빚에 찌든 연변 택시기사가 폭력단원들을 상대로 칼과 도끼질을 서슴지 않으며, 달랑 지도 한 장으로 대한민국 산기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니 영화적 설정으로 넘기기엔 디테일을 강조한 감독의 의도가 대체 어디에 있는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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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기계로 그려진 면가의 활용도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면가에게서 추격자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원했던 관객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허무한 면가의 최후는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한 일종의 미봉책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3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관객들이 본 것은 전자렌지에 데운 식어버린 추격자의 잔상일 뿐이었다. 모두가 나홍진이란 천재가 빚어낸 아이러니의 결과로 밖엔 설명되지 않는다.
◆ 셜록홈즈? CSI?…‘조선명탐정’ 흥행폭풍 왜?
문자 그대로 예상 밖의 선전이다. 아니 이 정도면 선전이 아닌 태풍의 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이 개봉 2주 만에 3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벌써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설 연휴를 석권한 극장 대첩을 발판으로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 당초 언론 시사회 뒤 ‘조선명탐정’의 성공을 점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맞춤식 타깃 공략을 들 수 있다.
극장가 주 고객인 20, 30대 남녀의 입맛에 맞는 빠른 전개가 한 몫 했다. 연출을 맡은 김석윤 감독은 극장판 ‘올드 미스 다이어리’로 데뷔한 신인 감독으로, 현재 KBS 예능PD를 겸하고 있다. 이 점을 십분 발휘해 사극의 고루함을 빠른 전개와 코믹 코드로 희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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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의 러닝타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스토리 속에 여러 사건을 녹여내다 보니, 구조상의 틈도 드러났다. 하지만 TV 드라마에 익숙한 주 관객층에겐 오히려 인간적인 면으로 보인 듯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장르를 알 수 없는 퓨전 형식도 적절한 효과를 봤다. 작가 김탁환의 ‘열녀문의 비밀’을 각색했지만 전혀 다른 스토리로 풀어냈다. 사극 속에 현대를 버무린 한마디로 난장판을 만든 것. 기존 사극과는 차별 점을 둔 대사도 보는 이들의 입맛을 돋우는 자극제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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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요소에 완급을 조절한 ‘연기 본좌’ 김명민과 ‘명품 조연’ 오달수 콤비의 연기가 더해지니 흥행은 두 말하면 잔소리에 가까운 앙상블을 이뤄냈다. 단아한 이미지의 대명사인 한지민의 팜므파탈 연기도 관객몰이에 한 축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