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담배를 끊을 때는 참 애를 태운다. 대개 ‘단칼에 끊었다’고 말들 하지만 그건 착각이고 워밍업 기간이 없을 수 없다. 슬슬 남의 지청구가 신경 쓰이는 게 첫 단계다. 기혼남성들은 "아빠, 담배 냄새 나"하는 말이 가장 큰 자극이라고 한다. 미혼들은 여자 친구나 애인의 싸늘한 시선이 효과 만점이다. 요즘 급격히 늘어난 여성 흡연자들은 묘한 페미니스트 분위기를 풍기면서 '너나 잘 하세요'하는 눈으로 끽연 삼매경이지만 직장에서 인사고과 같은 걸 무기로 정식으로 지적하면 직빵이다.
경험상 새벽 담배와 식전 담배, 화장실 담배, 커피 담배, 식후 담배 순으로 끊기가 어렵다. 작심하면 새벽과 아침 식전 담배 정도는 어렵지 않게 끊을 수 있다. 위장에서 되밀고 올라오는 화학물질 밴 입자의 냄새는 피우는 본인도 역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식구들의 눈초리가 매서운 화장실 담배도 왕따가 서러워서라도 끊고 말 수 있다. 여기까지 반나절. 오후로 넘어 가면서 유혹은 더 강렬해진다.
첫 고비는 점심 식후다. 흡연자들은 식후 연초를 어느 정도 신성시하기도 한다. '식후 불연초면 성기능 장애가 온다'는 따위의 말을 떠벌이기도 하고 '꿀맛'이라며 몽롱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담배 맛도 모르면서 무슨 인생을 알겠냐'는 무의식적 항변의 심보마저 엿보인다. 아주 가관이다.
두 번째 고비는 접대 담배다. 특히 직장인 흡연자들은 담배 피우는 거래처 손님이 오면 얼굴이 활짝 밝아진다.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뇌 속에서 흐뭇한 호르몬이 분비되는 걸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갑을 관계의 원리원칙을 흐리멍덩하게 하진 않겠지만 대화는 부드럽게 이어진다. 을의 입장에선 그 것만도 황송하다. 눈치 빠른 을들은 금새 갑의 마음을 읽는다. "저기, 담배 한 대 태우시면서 상담을..." 갑은 흠칫 놀라는 시늉을 하지만 눈꼬리는 이미 스마일이다. "아, 뭐 정 그러시다면 손님이시니까 특별히...그래도 여기선 안되고..." 뻔한 수작이 이어지다 슬몃슬몃 그들이 찾는 곳은 어두컴컴한 계단실이나 옥상 또는 건물 후문이다.
매연 그득한 하늘을 향해 세상의 스트레스를 다 날리겠다는 듯, 후우 연기를 뿜어 내는 그들의 입심에선 후줄근하던 근무태도와는 사뭇 다른 생명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어린애 젖빨듯 사팔눈이 되어 담배 필터를 흡입하는 자태는 우깃구깃 추레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서로 실실 흘리는 웃음도 그리 정겨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런 접대 담배는 나름 직장생활의 애환이 녹아 있는지라 끊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다름 아닌 술자리 담배. 그것은 장가계보다 더 높은 금연의 절벽,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 같은 마지막 괴수다. 술은 담배를 부르고 담배는 더 독한 술을 부른다. 혈관 속에 쫙쫙 스미는 니코틴 등 수 백 가지 독성 화학 물질이 거의 마약 수준으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양주 집에서 새벽까지 뭉개다 나와 다시 소주 집으로 기어들게 만드는 힘은 어쩌면 술보다 담배다. 바로 이 술자리 담배를 끊어야 진짜 금연 성공이라는 걸 경험자들은 너무 잘 안다.
금연 경험자로서 모든 흡연자들이 술자리 담배까지 미련 없이 끊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누가 이리 가자 저리 자가 하는 지도 모른 채 굴러가는 리어카 바퀴 같은 인생, 건강하면 뭐하고 백년 살면 뭐해?'하는 눈빛으로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옆자리 술꾼의 눈길을 차마 똑바로 맞받지 못하겠다. 콜록, 나오는 기침을 꾹 참고 고개를 돌려 구제역이나 물가 걱정하는 시늉으로 막걸리 잔만 물끄러미 내려다 볼 수 밖에. 희망에 설레기는커녕 걱정근심만 가득 밀려드는 1월이라니 참 유별난 새해다, 생각하면서...
[트렌드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