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양국간에는 현재 몇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만약 두나라가 이들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양국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첫째, 정치와 외교 분야에서 쌍방은 상호 신뢰가 부족하다. 특히 작년에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문제 발생 후, 한국은 조선(필자 표기: 이하 북한)으로부터 이유 없이 공격 당했는데 중국이 당연히 한국과 함께 비난하고 제재에 동참해야 함에도, 한국의 증거 부족을 이유로 이를 거절한 채 북한을 감쌌다고 생각한다. <중문 원문: 본지 중국어판 3면>
한국은 북한에 압력을 행사하는 한편으로 미국과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는등 미 일과 전략관계를 강화해왔다. 특히 미국의 항공모함을 황해(서해)에 불러들였는데 이에 대해 중국은 자신의 안전을 위협받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양국 국민간에 혐오정서가 깊어지고 있다. 양국 역사· 문화 문제에 대한 학계의 서로 다른 견해가 민간에 전파돼 대립이 격화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양국 국민 상호간 불신이 깊어지고 혐오가 확대됐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이를 어떻게 보고 해결해야 할까?
이런 문제는 양국관계가 깊어지면서 생겨난 '성장 속의 번뇌’이며 과정성(過程性) 요소가 강하다. 수교 초기에 양국은 모두 상대방의 좋은 점만 봐왔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신흥공업국가로서 사회에 활력이 충만하고 품질 좋은 공업제품이 넘치는 나라였다. 또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풍부한 전통문화와 방대한 시장을 지닌 나라였다. 자연히 상호 호감이 생겼을 것이다.
교류가 심화되면서 상호 신비감은 없어지고 쌍방은 상대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됐다. 특히 양국의 발전과 변화는 상호 보완성을 감소시켰고 경쟁적 측면이 확대돼갔다. 양국간 이익충돌이 빈번해지고 어느덧 양국은 권태기(七年之恙)에 접어든 것이다. 이것이 양국관계의 현주소다. 이 단계가 지나가면 양국은 더 높은 합작단계로 발전될 것이다.
또한 양국은 굴절과 오욕의 근대사를 겪은 후, 나란히 민족중흥의 길을 걷고 있다. 이 같은 배경아래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고 주체의식이 고양되고 있다. 이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주체의식이 일종의 편협한 민족주의로 변질되면 광적인 자아 팽창으로 발전될 수 있다.
이런 사상을 갖게되면‘주체’를 강조하며 냉정을 잃고 객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분별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또 구미에 맞게 역사를 해석하고 왜곡하며 배타적 태도를 갖게 된다.
또한, 현재 한반도의 냉전구도가 여전히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북한은 한국과 함께 통일의 주도권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경쟁관계에 있다. 냉전시대에 북과 남은 동서 양대 진영에 속했으며 냉전후에도 국제정치에는 여전히 냉전의 관성법칙이 작용을 하고 있다.
중·한 양국은 모두 이것이 시대조류와 양국의 이익이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이 같은 역사적 속박으로부터 철저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암함 사건 후 일부에서 소위 ‘북삼각(北三角)’, ‘남삼각(南三角)’그룹하며 제멋대로 떠든 것이 그것이다.
끝으로 양국은 모두 상대에 대해 편견과 오해를 갖고 있다. 이것은 양국관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중국 학계에서 추진한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해 한국은 중국 정부가 추진한 ‘정치(政治)공정’으로 이해한다. 사실 이것은 순수한 학술연구였지 어떤 정치적 동기도 없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일부 한국인은 한국 역사의 변경을 중국 장저(江蘇-浙江省)일대까지 포함시키며, 중국의 어떤 역사인물을 한국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한국과 같은 다원 사회에서 이런 주장은 일부의 ‘놀라운 말’일뿐 학계 주류는 아니며 정부의 관점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면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첫째, 양국 고위층이 상호 방문을 통해 공식 문건을 채택하고 명확한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중대한 문제는 양국간에 상호 통보하고 정보교류를 강화해 불신을 해소해야한다.
둘째, 양국간 정부와 민간차원의 교류와 합작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양국간 학술계와 청년계의 교류가 중요하다. 민간교류는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편견을 극복하는 유효한 방법이다.
셋째, 단기간 내 해결이 어려운 일부 논쟁은 보류해야 한다. 상대방의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될수록 이해하고 양해하며 상대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모든 나라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쌍방은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