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의 트렌드브리핑] 안동이 아닐 수 있다

2011-01-0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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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돼지 첫 발생지로 신고되었던 안동 지역이 첫 번째 감염 경로가 아닐 수 있다.'

구제역 청정국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소·돼지 살처분 행진이 100만 마리에 육박하고 있는 시점에 쌩뚱맞은 소식이 지역언론 특종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방역 주무부처인 농수산식품부에 의해 지난해 11월 29일 첫 신고라고 발표됐던 날짜도 틀리고 장관이 첫 감염경로로 지목해 국회 발언까지 했던 안동시 거주 3명의 축산업자도 사실 확인 결과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취재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봤다. 안동 현장에서 뛰고 있는 권동순 기자는 '초기 늑장대처를 감추기 위한 지역 방역당국의 조작 의심이 있고 언론의 마구잡이 기정사실화, 허위보고에 바탕한 장관의 섯부른 발표 등의 합작품'이라는 취지로 또박또박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 분통을 떠뜨렸다. "우리나라 축산업이 얼마나 큰 산업인데, 방역이 이 정도로 허술해서야 나라꼴이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30분 넘게 통화하며 얻어들은 취재 내용은 이렇다. 최초 구제역 돼지 의심 신고일은 방역 당국이 발표한 29일이 아니라 23일이다.

돼지 3000 마리를 사육하는 양모씨의 농장에서는 9월 경부터 호홉기질환 등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폐사하는 돼지들이 줄을 이었다. 10월 중순경이 되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어졌다. 10월 말에 지역 베트남 다문화 가정의 친인척으로 추정되는 베트남인 2명을 인부로 썼다. 11월 중순경 무려 1000여 마리의 돼지가 집단 폐사했다.

인터넷 등을 뒤지며 돼지 관련 질병 정보를 습득하다 구제역을 의심한 양모씨는 지역 가축질병연구소에 고기 샘플을 보내는 등 절차를 밟았다. 방역 당국이 사용하는 구제역 임시 진단키트는 50대 50의 확률로 알아맞힌다.

돼지의 식욕부진과 발굽 이상 증세 등 이미 농장주가 육안으로 구제역을 의심했지만 방역 당국은 판단을 미뤘다.

일주일여가 지난 11월 29일에야 구제역 첫 신고를 접수했다. 미적미적하다 언론의 취재경쟁이 잇따르던 중 어느 검역당국자가 '축산업자 중에 구제역 상시 발생국인 베트남 여행객이 있어서 조사 중'이라고 한 말이 순식간에 퍼져 기정사실이 돼버렸다.

장관도 공언했다. 허위내지 부실 보고를 믿고 최초 감염경로와 첫 신고일 등을 발표했다.

직원을 18명이나 둔 축산 사업가였던 권모씨가 최초 감염 경로로 지목됐는데, 축협조합장을 포함한 총 3명의 권모씨 등이 도매급으로 원흉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 권모씨 등이 대량으로 사육하는 소와 돼지들은 오늘까지 멀쩡하다. 거의 칩거하며 괴로워하던 권모씨가 최초 감염경로가 아니다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나왔다.

구제역 의심 돼지 최초 신고자였던 양모씨 농장 관련 이야기는 검역 당국이 애초 숨겼다가 나중에야 알려졌다.

양모씨도 폐사하는 원인이 구제역이 아닐까 의심하면서부터는 성실하게 검역당국에 호소하며 애를 썼다.

안동 민심은 권모씨 편과 양모씨 편으로 갈려 피폐해졌다.

단지 공무로 베트남 출장을 다녀왔을 뿐인 축협조합장 권모씨는 공연히 ‘사퇴하라’며 칼을 들고 쳐들어 온 불청객을 맞기도 했다.

권영세 안동시장이 특별담화를 발표하며 민심을 달래야 했고 경찰은 양모씨 농장의 개인적 살처분 돼지 600여 마리를 도로 파내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정식 조사를 의뢰했다.

양씨 농장에서 일하던 베트남인들은 누군지조차 알 수 없고 그들은 이미 잠적하고 없다.

베트남이 구제역 상시발생국이라는 점과 안동에 300여 베트남 다문화 신부가 있고 그 친인척들이 가끔 방한해서 축산농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관행이 있으므로 그들이 최초 감염경로가 아니냐 추정할 뿐이다.

방역 당국은 늑장대처뿐 아니라 감염경로 추정에도 실패했고 그에 따라 방역권 설정 판단도 잘못했다. 3km가 아니라 10km 이상이었어야 했다.

하급 방역 당국의 부실, 허위보고가 헛다리를 집게 한 원인이고 지금 축산재앙의 씨앗이 됐다. 총체적 난맥상이 제대로 드러났다.

“지금까지는 미시적인 팩트를 추적했는데요, 다음 주 부터는 총체적 난맥의 원인을 남김없이 파헤칠 거에요” 중앙 언론이 받아쓰기와 낙인찍기에 급급하며 팩트체크의 부실을 노출하는 동안 한 지역 언론의 사명감 충만한 기자가 큰 특종을 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그의 취재기를 비좁은 칼럼에 다 적을 수 없는 짧은 문장력이 통탄스럽다.

‘돼지고기, 소고기 값 오르겠네, 그러면 닭고기 먹어야지 뭐’ 입맛이나 다시던 내 꼴을 되돌아볼라치면 어디 인적없는 바위 산 굴속에라도 쳐박혀 아프게 무릎 꿇은채 하루종일 눈물이라도 쏟고 싶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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