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과 성공경영 2] 진나라 15년 천하와 한국의 재계 3세 경영시대

2010-11-3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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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박정규 상무) 은나라, 주나라를 거쳐 중국의 중원은 기원전(B.C.) 770년을 전후해 제후들이 각 지역을 분할해 통치하면서 영토 확장 경쟁을 펼치는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무려 500여년에 걸쳐 전개되는 이 ‘각본 없는’ 시기가 바로 춘추전국시대다.
 
 자고 나면 나라가 생겼다 사라지는 등 70여개국의 서바이벌 게임(Survival Game)시대를 거쳐 생존한 나라는 7개. 진시황은 B.C. 221년 이들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문제는 수성(守城)이었다. 시황제가 중원 통일 12년 후 전국 순행 도중 병에 걸려 사망하자 황위를 이은 영호해(嬴胡亥)는 진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3년 만에 조고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시해당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500년이 걸렸지만, 망하는데 걸린 기간은 15년에 불과했던 것이다.
 
 진나라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후 한(漢)나라를 거쳐 ‘삼국지’ 시대가 전개됐다.유비는 조조, 손견과 경쟁해 우여곡절 끝에 촉나라를 세웠지만, 유비 사후 나라를 물려받은 유선은 나라를 사마소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와 달리 오나라 손견의 황위를 계승한 2남 손권은 황하 이남의 영토를 더욱 확장하는 등 선친보다 더욱 큰 업적을 쌓았다.
 
 중국의 2세 황제들의 역사는 오늘날 3세 경영시대를 열고 있는 우리 재계에 적지 않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경쟁사들이 호시탐탐 빈틈만 노리는 글로벌 약육강식의 경쟁시대에 자칫 승계에 실패할 경우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병철 창업주의 삼성그룹과 뿌리를 같이 하면서도 공중분해 된 새한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최근 이재용 부사장의 승진을 예고하면서 본격적인 승계작업을 서두를 조짐이다. 현대차 그룹은 진작부터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진행해왔다.
 
 효성그룹의 3형제(조현준 사장, 조현문 부사장, 조현상 상무), 한진그룹의 조원태 전무, GS건설 허윤홍 부장 역시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한화그룹의 장남 김동관 차장과 형제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양자인 구광모 과장, 동부그룹 김남호씨 등도 수면 위에서 또는 아래에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두산그룹은 박용현 회장, 박용만 회장에 이어 박용성 회장의 아들인 박정원, 박지원 사장 등 3세에 이어 4세경영 체제에 접어들고 있다.
 2.5세대라 할 수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이어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CJ그룹 이재현 회장,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은 이미 공식적으로, 애경그룹 채형석 총괄부회장 등은 실질적으로 그룹의 총수 역할을 하고 있다.
 
 7~10년간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3세 경영자들의 경우 상당한 파고와 검증을 거치면서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은 많이 사라진 상태다.
 
 그러나 이제 재계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앳된 총수 후보들에 대한 시선은 그야말로 ‘불안’ 그 자체다.
 
 이들 대부분은 선친들처럼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사업을 일으킨 경험이 전무하다. 대구 삼성상회 한 쪽 벽에 종이 판지로 칸막이를 치고 잠을 자며 사업을 일으켰던 이병철 삼성 창업주, 500원짜리 지폐로 선박을 수주한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경험은 이들에게는 전설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신 본인 과실로 인한 이혼 등 수신제가(修身齊家)에 실패하고, 해외 부동산투기,민간인 폭행, 공공장소 행패 등 외부에 드러난 사실 만으로도 기업을 키우고 ‘노블리스 오블레주’를 실천해나갈 인물들이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은 3세들이 부지기수다.
 
 국내 창업 1세대들은 대체로 자식들이 많아 나름의 재목(材木)에 따라 기업을 분할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2세대들 가운데는 자식을 적게 둔 경우가 많아 최고경영자 재목이 되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기업을 물려줘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오너 3세들이 최고경영자 재목으로 부족하다면 미국이나 유럽의 대기업들처럼 창업가문이 이사회를 맡으면서 기업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구조가 바람직하겠지만, 우리나라의 기업 풍토는 능력 유무를 떠나 오너 일가가 직접 경영에 나서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LG그룹, 두산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우처럼 오너 또는 그 친족의 경영인이 능력 부족으로, 또는 여러 이유로 물의를 일으켜 밀려났다가 복귀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대체적으로 3세 오너 경영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장’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모든 것이 다 갖춰진 환경에서 자라고 유학하고, 낙하산 간부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다보니 말단 현장, 시장의 움직임을 촉수로 파악하는 훈련이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이 현장에서 상황을 직접 점검하고 대안을 찾기 보다는 실무자들이 점검해 올린 보고서를 토대로 종합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익숙해 있다.
 
 결국 냉엄한 시장의 한 쪽 귀퉁이부터 둑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채 어이없이 기업을 패망의 나락으로 이끌곤 한다.
 
 오너경영에 따른 위험 부담은 당사자인 창업 가문의 몰락만 가져오는게 아니다. 부실 규모에 따라 한국 기업, 금융 전반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곤 한다.
 
 3세 경영자들은 진흙 벌을 맨발로 누비듯, 뼈를 깎는 자세로 겸허하게 현장 수업부터 받아야 하고, 또 현장을 즐겨야 한다.
 
 ‘현장에서 사물의 이치를 간파해 지식을 완전하게 한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교훈(大學)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기업 흥망의 사례들이 현장의 중요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또한 최고경영자가 시장을 꿰뚫는 통찰력과 기업을 키워나갈 리더십을 갖추지 못할 경우 창업 1~2세대가, 그리고 국민들이 애지중지 키워온 기업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다는 지적을 새겨야 한다.
 
 통일 진나라의 비애는 정글과 같은 글로벌 경쟁의 현장에서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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