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규의 중국이야기] 3장.회오리 치는 부동산 광풍

2010-11-12 14:00
  • 글자크기 설정

[최헌규의 중국이야기] 3장.회오리 치는 부동산 광풍

3장-1 결혼을 위한 패스포트 아파트 문서

“사윗감을 만날때 우리 엄마가 제일먼저 묻는 말이 있어. 아파트 있냐는 거야. 없다고 하면 면접은 거기서 바로 끝나고 말아. 무조건 있다고 해야 돼. 알았지”
중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팡누(房奴)’라는 TV드라마에서 여자친구 딩쟈신(丁佳馨)이 사귀는 남자친구를 데려와 자기 어머니한테 인사시키기에 앞서 주의사항을 당부하는 대목이다.
남자친구는 “알았다”고 자신있게 대답했으나 막상 엄한 여자친구의 어머니앞에 서자 주눅이 들어 없다고 사실대로 고하고 만다. 여자친구의 엄마는 볼일 없다며 바로 퇴짜를 놓는다. 어깨가 축 쳐저서 방을 나오는 모습에 일이 글렀음을 예감한 여자친구가 다급하게 묻는다.
“뭐라고 대답했어”   
“거짖말이 안나와서 사실대로 말씀 드렸어.”

여자친구는 “이런, 바보.  돼지가 왜 죽었는지 알아.”라고 쏘아붙인다.
“배 터져 죽은거 아냐?”
“아유, 이런 바보, 자기처럼 아둔해서 죽었어, 아둔해서…”
TV 드라마는 사회상과 서민들의 생활상을 들여볼수 있는 아주 유용한 도구다. 팡누는 ‘집의 노예’라는 뜻으로 서민들이 평생 집한칸 마련에 바둥대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요즘엔 천정부지의 식품물가에 치여사는 서민이라는 뜻으로 '차이누(菜奴)'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

땅이 넓은 중국이지만 중국인들 역시 내집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다. 당국이 올해도 5월과 9월 잇달아 고강도 집값 억제 대책을 내놨으나 별 약효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요도시의 지난 10월 집값은 작년비 8.6%나 올랐다. 직장인의 경우 27년이나 꼬박  저축해야 두어칸되는 아파트 한 채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드라마 팡누속에서 딩쟈신의 어머니는 집 없는 총각한테는 결코 딸을 내줄 수 없다고 고집한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젊은 남녀의 사랑을 야속하게도 아파트가 가로막는 꼴이다.
팡누말고도 집을 주제로한 TV드라마는 쐉몐쟈오(양면테이프), 팡즈(房子ㆍ집)’ 워쥐(蝸居ㆍ달팽이 집, 누추하고 작은 집)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 2009년 방영된 워쥐라는 드라마는 사회상을 다소 시니컬하게 다루고 극중의 설정을 부동산 개발과 관련한 관료부패로까지 확대시켰다는 이유로 방영 중단 사태까지 맞았다. 
워쥐의 주인공인 궈하이핑 부부는 상하이 푸단(復旦)대를 졸업했지만 내집마련에 있어서는 다른 이웃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 내집 장만을 위해 단칸방에서 아둥바둥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 부부의 삶은 그 자체가 곧 투쟁이나 마찬가지다.
궈 부부는 그나마 명문대학을 나와 직장을 잘 잡은 경우여서 고생 끝에 작은집 하나를 마련한다. 하지만 주택 대출금 상환과 고물가에 치여 삶은 여전히 팍팍하기만 하다. 행복의 여신은 여전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곳에서 얄궂은 미소만 보내고 있다.
극중에서 궈하이핑은 “쳇! 인민을 위한 봉사는 무슨, 부자들을 위한 배려 밖에 없구만”이라고 쏘아붙인다.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슬로건이 무색해진 현실을 꼬집는 말이다.
드라마 워쥐는 불균형의 사회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당 간부들과 부동산 개발업자들간의 정경유착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도시 샐러리맨의 고달픈 삶도 진솔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공감을 일으켜 시청자들을 TV 앞에 끌어다 앉혔다.
중국에서도 집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다. 집은 행복이기도 하지만 불행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집때문에 울고 웃고, 집에다 모든 희망을 걸고 집 때문에 상처받거나 좌절하기도 한다. 한 여론조사에서 중국인 응답자의 80%가 “내 집마련은 행복과 직접 관계가 있다”고 답할 만큼 중국인들에게 집은 중요한 의미다.

하지만 사람들이 집을 갖기 위해 치러야하는 대가는 너무나 혹독하다. 마치 30년후 어느 한순간 행복을 얻기 위해  30년동안 고난의 행군을 해야하는 것과 같다.  드라마 워쥐의 주인공 궈하이핑의 입에서 나온 ‘쳇, 인민을 위한 봉사는 무슨...’이라는 말은 차라리 집을 배급받던 사회주의 시절이 더 행복했다는 현실 불만의 한탄인 것이다. 
집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부동산 소식은 하루도 빠짐없이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당기관지인 인민일보는 거의 매일 서민 주택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설을 싣고 있다. 관변 학자들중에는 중국에서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수 있다며 부동산 망국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업성이 강한 일반 지방지(도시보)들은 집값 상승이 경제 성장과 맞물린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부동산 특집 등으로 광고수익을 올리는데 혈안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