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건물은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진화작업이 어려워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매우 엄격한 방재 관련 법규를 적용하며 화재 예방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있다.
고층 건물이 밀집해 있는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 3개 도시의 방재 정책 및 고층건물의 화재 대비시설 운영 현황을 살펴본다.
◇미국 뉴욕 = 미국은 초고층 건축물에 대한 방재 관련 법규는 매우 상세하고 까다롭다.
우선 미국 방화협회(NFPA)와 소방기술사회(SFPE) 등이 기본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각 주와 도시 등 지자체는 지역의 특색과 기후, 성격 등에 맞춰 건축물 규정을 상세하게 정한다.
모든 건축물 방재체계의 기본이 되는 NFPA의 미국화재안전기준(NFC, National Fire Codes)만 해도 총 15권에 280여 개의 코드로 이루어져 있다. 화재나 폭발, 소방시설, 인명안전, 전기, 가스 분야를 총망라해 분량만 해도 약 1만여 쪽이나 된다.
여기서 건물의 용도와 위치, 높이와 면적, 형태 등에 따라 건축물 관련 방재 기준은 조금씩 달라진다.
각 지자체는 인명이나 재산적 가치, 사고 발생시의 상황 등을 모두 고려해 건축물의 구조와 시설, 내·외장재 등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 건축물은 바닥이나 보, 트러스, 기둥, 계단실, 엘리베이터, 배관과 도선 등에 이르기까지 재질이나 크기 등에 대한 기준이 있으며, 내력벽과 마감 벽, 단순 구획물 등의 재질에 대해서도 조항이 마련돼 있다.
면적에 따라 최소 방재 담당자의 수를 정해놓기도 했다.
초고층건물에 필요한 피난 층의 경우 미국에서는 지상층을 가장 안전한 피난 층으로 인정할 뿐이다.
하지만, 모든 건물은 내부에 대피장소를 설치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번 해운대 주상복합건물 화재진압 때 헬기가 큰 역할을 했지만, 미국에서는 헬기 착륙장인 헬리포트에 크게 의존하지는 않는다. NFC에 헬리포트 설치에 관한 규정은 있지만, 법규상의 강제조항은 아닌 것이다.
이는 지난 1977년 뉴욕시 팬아메리칸 빌딩에 착륙하려던 헬기가 고장을 일으켜 건물과 충돌하면서 승객과 행인 등이 사망한 사고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초고층 건물 최상부에서는 바람이 강해 헬기의 이·착륙이 생각만큼 쉽지 않아 비상시 인명구조 활동을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또 헬리포트가 있더라도 유사시에 구조 가능한 범위는 최상부 10개 층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다.
대신에 미국은 자동소화장비에 대한 의무조항이 엄격하다.
건물은 높이가 높을수록 방재가 어려워진다. 이번 해운대 사고처럼 외벽을 통해 화재가 확산되면 소방관이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수동식 소화기구는 별 소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스프링클러와 같은 자동소화시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모든 초고층 건물은 스프링클러 방호가 의무화돼 있고 여기에 일정 수준으로 수동적 방호시설도 함께 제공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일본 도쿄 = 일본이 고층빌딩의 화재를 막으려고 하는 일 중에 가장 특징적인 점은 대피훈련을 자주 한다는 점이다.
대기업 본사와 금융·언론사 등이 즐비한 도쿄 중심가 신바시(新橋)에 있는 35층 규모의 S빌딩.
이 빌딩은 방재센터 주도로 화재·지진 등의 상황을 가정해놓고 사이렌을 울려가며 수시로 훈련을 한다.
이번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의 고급 주거형 오피스텔 화재사고처럼 화재가 발생하면 건물 관리자와 입주자, 소방당국이 어떻게 대피하고 진화작업을 해야 하는지, 구명 활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서를 만들고 이를 몸으로 느끼게 하려고 자주 연습을 하는 것이다.
입주사 방재 담당자에게는 매달 훈련 일정을 미리 알려줘 불필요한 혼란을 피한다. 따라서 빌딩에 있는 모든 이들이 훈련시 어디론가 대피해야 하는 건 아니고, 대부분은 입주자 대부분은 하던 일을 하면 된다.
일본은 관련 규정도 엄격하고 촘촘하게 만들어놓았다.
소방법·건축기준법 규정에 따라 대형 건물의 소유주는 방재센터를 만들거나, 방화벽 스프링클러, 비상용계단을 설치하는 등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대형빌딩 입주자는 매년 한 차례 법정 자격을 갖춘 방화·방재점검 전문 회사에서 의뢰해 방화점검을 받아야 한다. 입주자 부담은 한국 돈으로 50만∼60만원에 이른다.
올해부터는 소방법이 개정돼 방화점검 외에도 지진 등에 대비한 방재점검도 의무화됐다.
S빌딩 방재센터 관리자 시미즈 요시타카(淸水美貴)씨는 "일본은 (한국의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에도(江戶)시대에 워낙 자주 화재 피해를 본 일이 있어서 동네마다 자율 소방대를 만든 경험이 있다. 지진도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전 국민이 방화·방재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서 자주 훈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빌딩 입주자나 호텔 등 숙박업소 고객들은 각종 방화·방재 훈련 참여에 적극적이다. 불평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UAE 두바이 = 두바이 정부는 초고층 건물에 대해서는 엄격한 방재시스템을 갖추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두바이에서 연면적 20만평방피트(1만8천㎡) 이상 또는 21층 이상의 건물은 의무적으로 소방서의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RMS)의 모니터 대상이 된다.
RMS는 고층 건물의 화재 경보시스템이 소방서 상황실과 연결되도록 해 화재 발생시 신고 없이도 소방서가 GPS를 통해 화재 발생 건물의 위치를 즉각 파악, 신속한 진화활동을 벌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미국방화협회(NFPA)의 안전기준을 준용하고 있는 두바이 소방당국은 아울러 고층건물의 경우 지하실을 포함, 각 층마다 화재 경보장치를 구비해야 하고 저층에 화재 진화용 물탱크를 갖추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건물 준공 검사시 이뤄지는 재난 안전시설 검사도 매우 엄격하게 진행된다.
두바이 정부 민간안전부 소속 심사관은 화재 대비 시설 및 방재시스템 이행 계획을 사전에 제출받은 뒤 현장을 방문, 소방펌프 및 스프링클러의 정상 작동 여부 등을 직접 확인한다.
안전기준을 충족치 못한 건물은 기준에 맞도록 시설을 보완해 다시 준공 검사를 신청해야 한다.
이런 엄격한 기준은 세계 최고 높이 건물인 부르즈칼리파(높이 828m)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총 160층의 부르즈칼리파는 42층, 75층, 111층, 138층 등 모두 4개 층에 피난안전구역을 두고 있다.
모두 6천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구역은 특수 방화재로 마감돼 있는데다 외부 공기만을 받아들이도록 설계돼 건물 내부에서 불이 나도 문을 닫고 2시간 동안 피신해 있을 수 있다.
화재 발생시 모든 승강기는 1층으로 내려가 정지되지만 소방관 전용 승강기 3대는 화재와 상관없이 138층까지 계속 운행하며, 모든 디지털장비가 불통됐을 때를 대비해 육성으로 경보를 전파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부르즈칼리파를 건설한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오성백 부장은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세계 각국에서 여러차례 준공검사를 받아봤지만 화재 안전시설에 대한 두바이의 검사는 꽤 엄격한 편이었다"며 "고층건물의 경우 철저한 방재 시스템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데 따른 방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