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의사 후손이 1940년 창간 연보 기증

2010-09-2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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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당시 한국의 경제 상태는 몹시 빈약했으며 위생 상태는 떨어지고 위생 행정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상태였다. 각종 전염병의 유행이 그칠 줄 모르는데도 무서워할 뿐 예방법을 몰라 안타까웠다.'
28일 전남대학교병원이 확보한 `전남도립 광주의원' 연보 창간호에 나온 내용이다.

1940년에 발간된 이 연보는 1937년부터 1942년까지 광주의원 원장으로 근무했던 시라베 라이스케(調來助) 원장의 딸인 시라베 초코(調朝子)씨가 이날 개원 100주년을 행사를 하는 전남대병원에 기증하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이 연보는 1910년 광주자혜의원으로 개원할 때부터 1939년 도립 광주의원까지의 입원 및 외래환자 통계, 수입액은 물론 일본인 의사들의 병원생활, 당시 의료 현실 등이 기술돼 우리나라 의료사 자료로 그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보는 그동안 국내에 마이크로필름으로만 존재했고 원본은 일본의 한 대학이 소장한 것으로 전해져 왔다.

연보에 따르면 1910년 당시 전체 직원은 원장 이하 촉탁 군의관 1명, 조수 2명, 고용원 2명, 간호부 2명, 소사 2명 등 11명이었지만 1939년에는 124개 병상에, 120명의 직원과 연 9만 1천 400명의 환자를 진료했고 광주와 전남도뿐 아니라 평양, 대구로부터 온 환자도 많았다.

당시 의료 환경에 대해 연보는 한일합병 전의 조선의술이 얼마나 유치한 것이었는지는 일부러 적을 필요도 없고, 조선인 대부분은 무당의 기도 혹은 초근목피로 병을 치료하려는데 그쳤으며 특히 천연두, 콜레라 등 전염병의 참화로 실로 비참한 상태를 보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각종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장성 순회 진료 중 기름병을 들고 안약을 받으러 오거나 아버지가 자신의 병이라고 속이고 아이의 복통약을 받으러 왔다.

간장 질환자가 많았는데 그 원인으로는 알코올 남용(특히 홧술)과 자극성의 식사(고추) 등 때문으로 보인다고 기술했다.

또 1910년도에 매일 200명의 환자가 찾아는데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이 없어서 환자 수가 크게 줄었다.

약만 받으러 온 사람이 진지한 얼굴로 옷을 벗고 진찰을 받거나 30세 정도의 남자가 60세의 여자라며 자궁출혈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일제강점기 국제 정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많다.

당시 전남도경찰부장이던 도리야마 스스무(鳥山進)가 연보에 쓴 발간 축하 인사에는 `성전(聖戰.중일전쟁을 지칭)이 벌써 3년을 넘어서, 위업이 날이 갈수록 순조롭게 성취되는 경과를 보이고 있다. 장개석(蔣介石) 정권의 그림자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제정세는 다사다난하다'고 적고 있다.

이날 100주년 기념식을 위해 전남대병원을 찾은 시라베 원장의 손자는 "역사의 현장에 연보가 당연히 있어야 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기증을 계기로 전남대병원 초기 역사가 잘 복원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남대병원 관계자는 "공백 상태에 있던 병원 초기 30년 역사를 되찾게 됐다"면서 "광주의 근대 지방사를 정리하는데도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보고 연보 번역을 완료하는 대로 관련 전문기관에 자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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