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퇴직연금 영업 비밀은? '갑을(甲乙)관계'

2010-07-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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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유경 손고운 기자) 은행권이 가장 낮은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퇴직연금 시장점유율을 갈수록 확대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퇴직연금 수익률과 적립액이 정반대인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퇴직연금은 노후를 위한 대비성 자금이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은 사업자에 가입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은행들이 낮은 수익률에도 적립액에서 승승장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소위 말하는 '갑을(甲乙) 관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시설·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 대출 만기가 돌아와도 이를 상환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은행은 기업의 자금원이기 때문에 여기서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된다.

보험사 및 증권사와 기업의 관계는 은행과는 반대다. 기업은 보험사의 화재보험 등 보험상품에 가입하거나 증권사에 유보금 및 기금 운용을 위탁한다. 결국 기업이 보험이나 증권사에 대해 갑인 셈이다.

이 같은 역학관계 불균형이 은행의 구속성 영업행위(꺾기) 관행을 가능케 한다. 보험사나 증권사들은 은행의 승승장구를 부러운 눈초리로 지켜봐야 하는 실정이다.

한 대형 생보사 퇴직연금 담당자는 "은행이 기업의 자금 유동성을 쥐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무기"라며 "보험사에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 은행의 편법영업을 통한 독주를 막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체 자금조달이 가능한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은행에 좌지우지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

현재 퇴직연금에 가입한 6만여개의 기업 중 70% 가량이 10인 이하 중소기업이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기업대출을 받은 주거래 은행에서 퇴직연금 가입을 요청하면 겉으로는 부탁 같아도 사실 듣는 사람에게는 큰 압박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운용사를 선정할 때는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사실상 기업대표가 경영상의 문제를 이유로 특정 운용사를 선정했을 때 직원들이 이에 반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문제는 퇴직연금 사업자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직원 개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이익 증대를 위해 특정 사업자를 선정할 경우 그 만큼 연금 수혜자들의 혜택은 줄어들게 된다.


퇴직연금 상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확정급여형(DB형)의 경우 은행권 수익률은 1.12%(2분기 기준)로 생명보험사(1.28%), 손해보험사(1.26%), 증권사(1.36%) 등에 뒤져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불건전 영업행위 근절을 위한 공문을 각 은행에 발송하고, 성과평가제도(KPI) 개선을 추진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조치가 영업 현장에까지 미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H증권사 퇴직연금 담당 임원은 "은행이 기업에 대출영업을 하면서 (퇴직연금 가입을 위해) 직원들의 도장을 챙기는 경우가 아직도 발생하고 있다"며 "퇴직연금 영업은 교차영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 당국의 개선안이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국이 개선 의지가 있다면 영업현장이나 관례 등을 뒤엎을 수 있는 강력한 제도개선 및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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