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 활성화는 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친서민 정책이다.
서민금융은 정작 돈이 없는 사람이 대출 받기가 더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금융기관이 채무불이행을 우려해 저소득·저신용층에게 돈을 빌려주길 꺼려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금융권에 서민 대출을 독려하는 한편 정부 주도로 저신용층에게 자금을 직접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이같은 복지성 서민금융 정책이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고 금융시스템을 교란할 수 있다는 지적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전문가들은 백화점식 서민금융 정책보다 친서민적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3회에 걸쳐 친서민적인 금융시장 조성을 위한 과제들을 다뤄본다.
(아주경제 고득관 기자) 출범 6개월을 넘긴 미소금융이 여전히 실적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통해 저소득·저신용층에게 5% 미만의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겠다던 야심찬 계획은 빛이 바랬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9월 미소금융 사업을 시작하면서 연간 2000억원 이상씩 10년간 총 2조원 가량을 20만~25만 가구에게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까지 전국 48개 미소금융 지점은 1204명에게 93억2000만원을 대출해주는 데 그쳤다. 당초 목표의 10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실적이다.
사실 처음부터 미소금융의 실적 부진은 예고된 것이었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상품의 가이드라인 자체가 금융보다 복지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미소금융은 상품 구조 자체가 많이 팔릴 수 없게 설계돼 있다. 금리는 4.5%로 지나치게 낮은 반면 대출자의 자활을 돕기 위해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자에게 사전 교육, 사후 컨설팅을 제공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이렇게 과다한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 일반 여신처럼 실적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며 "관리비용은 과다한데 금리가 너무 낮다보니 당연히 대출 심사가 엄격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소금융이 모델로 삼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뱅크는 일반 대출에 연 20%의 금리를 부과하고 있다.
미소금융과 달리 민간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희망홀씨대출도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평균 13%의 금리를 부과하는 희망홀씨대출은 상품 출시 1년 3개월 만인 지난달 말 대출잔액 2조원을 돌파했다. 대출자는 9만2000여명이다.
미소금융은 창업자금을 지원하지만 희망홀씨대출은 서민층의 수요가 높은 긴급생활자금을 공급한다. 대출금액이 소액인데다 금리도 연 8~19.8%로 고객의 신용등급에 따라 차등 책정되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리스크가 훨씬 적다.
전문가들은 복지성 서민금융 정책보다 서민금융기관을 육성하는 친서민적 금융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가 서민금융 정책을 주도할 경우 금융시장의 활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찬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리 융자에 초점을 맞춘 지원은 시장친화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서민금융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서민금융시장의 실패를 인위적인 공급확대로 보완하기보다 이 시장을 존재의 근거로 삼는 서민금융기관들 스스로 공급 확대를 통해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dk@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