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BMW 등 수입차 운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슬슬 렉서스를 깔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렉서스를 보며 부러운 눈길을 보내던 사람들도 이제는 힐끗 쳐다보며 코웃음을 치고 있다.
천정부지 기름값 때문에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로 바꾸려던 사람들도 당분간 모험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캠리'의 국내 시판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들도 "섣불리 결정하지 않기를 잘 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다.
"도요타가 인기 만회를 위해서 바겐세일에 나서면 살거야"라며 치기어린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대다수는 도요타 차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미국 차나 독일 차도 급발진 사고나 리콜이 많았다"며 아무리 물타기 홍보 전략을 펼쳐도 한 번 뇌리 속에 박힌 도요타 불신은 가실 줄을 모른다.
고생 고생 명성을 쌓아 온 20만 도요타 사람들에겐 야속하게 느껴지겠지만 소비자들의 심리는 원래 냉정한 것이다. 더구나 구매 대상이 자동차라면, 소비자들이 자동차 메이커에게 보내는 신뢰란 곧 자기 생명을 맡기는 것과 같다.
심한 말이지만 도요타는 고객의 생명을 귀하게 취급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 것 같다. 신뢰의 붕괴는 이런 인상에서 비롯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요타 판매 전략의 핵심은 '신뢰'였다.
최고의 성공 차량 렉서스는 미국 판매법인의 주도로 기획됐고, 미국에서 먼저 성공해 세계적으로 퍼졌다. 생산 중심의 도요타가 판매와 마케팅 중심의 도요타로 변신한 최초의 시도였다. 변방 취급받던 마케팅 파트가 도요타에 영혼을 불어 넣으며 전면에 나선 역사적 순간이기도 했다.
'렉서스(LEXUS)'는 '럭셔스(LUXUS)'의 변형이었고 '벤츠보다 저렴하나 캐딜락보다 성능 좋은 명품 브랜드'를 뜻했다. 도요타 자동차판매주식회사 미국 법인은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알래스카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고장차 수리를 해주기도 했으며 고객의 호텔비를 대주기도 했다고 한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마케팅 일화 중에는 렉서스 안에서 아이를 낳은 한 미국인 산모의 사연도 있다.
급한 나머지 렉서스 딜러의 도움을 받았던 산모 가족은 차량을 조건없이 빌려 준 데 이어 아기를 낳은 차량을 청소해 놓고 기름까지 채워서 되돌려 준 은혜를 못 잊어 태어난 아기에게 '알렉서스'라는 중간 이름을 넣었다고 한다.
신뢰와 감동을 넘어서는 무한 충성 고객의 탄생 스토리다.(이시자카 요시오 전 도요타 부사장의 '도요타 판매전략' 중)
렉서스와 도요타의 신뢰는 '돈'보다 '명성'을 중시한 전략이었고 전략을 넘어서는 경영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도요타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
고장수리 건수와 리콜이 줄줄이 이어지는 사태만 벌어진 걸까? 도요타에게 억울한 과장된 언론 보도와 미국 정부의 '도요타 때리기' 공작만이 횡행하고 있는 걸까? 무식한 소비자들이 도요타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며 코웃음 치고 있는 상황인 것인가? 금새 지나갈 허리케인 같은 일이 반짝 위세를 떨치고 있는 데 불과한 것인가?
지금 도요타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어떤 상념들이 떠오르고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소비자들의 뇌리 속에서는 모든 게 분명할 것이다. '도요타에게 속아 왔다'는 찜찜함. '앞으로 더 이상 도요타를 신뢰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 만일 전자제어장치 결함과 결함 발생의 구조적 메카니즘이 노출된다면, 느낌은 '의지'로 변할 것이다.
도요타 사람들은 나쁜 사실을 부인하거나 묻혀지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뇌리 속에 각인된 '신뢰할 수 없는 도요타'의 이미지는 오래가고 강화될 조짐이다.
'신뢰의 붕괴'는 두말할 나위 없이 도요타 학습효과의 첫 번째 주제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