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고 했던가. 2009년은 KB금융지주에게 잊지 못할 한해가 될 것 같다.
황영기 전 회장이 우리은행 재직 시절 파생상품 투자 관련 손실로 물러난 것이 불과 2개월여 전. 이제 차기 회장 선임이라는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대사가 먹구름이 되어 KB금융을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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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성 금융부 차장 |
11월12일에는 조담 이사회 의장이 회추위 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지주산하 평가보상위원회와 헤드헌터사를 통해 인재풀을 구성했다. 사외이사의 추천까지 더해져 회장 후보는 21명으로 추려졌다.
20일에는 후보군이 3명으로 압축됐다. 강정원 국민은행장, 이철휘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이 KB금융 회추위에서 뽑은 '숏리스트'였다.
시장의 전망은 단연 강 행장의 우세였다. 안정적인 경영으로 금융위기에 적절히 대처한데다 특별한 '적'이 없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암초는 생각지 않은 곳에서 튀어나왔다. 다른 후보들에 대한 정치적인 압력이 있다는 것에서부터 금융당국의 불편한 심기까지 거론된 것이다.
이철휘 사장은 청와대 핵심인사의 측근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외압설의 중심에 섰다. 김 전 사장 역시 관료 출신으로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이 구설수에 올랐다.
더욱 부담이 됐던 것은 금융당국의 입장. 두 후보가 사임 의사를 밝힌 1일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강 행장 단독후보로 회장 선임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두 후보의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회장 선임이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금융당국은 황 전 회장 사임 이후 강정원 행장의 독주 체제에 대해서도 상당한 불만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주사와 달리 KB금융은 주인 없는 회사와 같다. 정책당국자들 사이에 강 행장이 주인처럼 행동하는 것은 견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을 수도 있다.
내년 외환은행 매각과 우리금융 민영화 등 금융권 빅뱅을 앞두고 M&A의 중심에 설 KB금융의 수장 선임에 대해 금융당국이 안테나를 길게 빼놓고 있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강 행장 또한 최근 사외이사진에 이른바 '친강 라인'을 구축하며 이같은 견제론의 배경을 제공하기도 했다.
문제는 금융권에서 이번 사태가 또 다른 관치금융의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KB금융은 그동안 금융권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독립적으로 이사회를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금융지주사들은 최고경영자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지만 KB금융 만큼은 경영자와 이사회 의장이 분리된 시스템을 갖췄다.
정치적 외압설을 불러왔던 두 후보가 사임했지만 이는 외압설을 해소했다기보다는 KB금융 회장 선임 자체를 연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측근 인사 논란에 이어 금융당국이 KB금융에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고 있다는 말도 신빙성을 더해가고 있다.
KB금융 사태를 보며 금융당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관치금융'이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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