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의 재료인 지필묵으로 유채화를 그린다면 유채화 특유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두터운 느낌이 나는 유채물감으로 수묵화를 그리면 수묵화의 담백한 느낌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림의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재료로 그려야 느낌이 산다는 건은 상식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오히려 고정관념이라며 우리에게 알려주는 작가가 바로 전준엽이다.
전준엽 作 빛의 정원에서 - 내일의 태양 |
전준엽은 유채물감으로 새로운 개념의 현대적인 산수화를 그렸다. 유채화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인상은 한 폭의 수묵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산과 물, 소나무, 바위, 정자 등이 그렇다.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인 석양 풍경과 강에서 배를 저어가는 사람을 보면 일반적인 유채를 이용한 풍경화와는 사뭇 다르다.
새로운 시도의 작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독창적이고 기발한 방법이 필요하다. 전준엽 만의 독특한 밑그림 처리가 그것이다. 전통 수묵화 기법인 번지기, 스며들기를 유화를 이용해 캔버스에 적용시켰다.
5번 이상 하얀 유화로 문지른 캔버스 위에 유화 물감 덩어리로 질감을 나타내고, 색이 곱게 스며들어야 할 곳은 샌드페이퍼로 곱게 갈아낸다. 그리고 그 위에 색감 차이를 계산하여 서로 다른 물감을 충분히 뿌린 후, 캔버스를 흔들어 스며들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유화 물감들이 서로 섞이고 응고되어, 붓으로는 불가능한 표현의 효과를 만들어 냈다.
전준엽 作 빛의 정원에서 - 흐르는 강물처럼 |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자연이 어느 새 인간을 위한 수단, 객체로 전락해버렸다. 서양의 자연관이 여과 없이 받아들여진 것도 한 몫 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자연은 본디 ‘벗’ 그 자체였다. 그런 우리에게 전준엽은 그림을 통해 말한다. 그의 그림을 감상하다보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어 직접 풍경 속을 거니는 느낌을 받는다. 언제나 걷는 그 길, 그 풍경을 걷는 것처럼. 자연을 제대로 바라 볼 여유가 없어, 그 원래의 의미를 잊은 채 사는 우리에게 ‘전준엽 초대전’은 새롭게 자연을 느껴 볼 좋은 기회다. 문의 빛 갤러리 720-2250
아주경제= 박성대 기자 asrada83@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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