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 중국이 '세계의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유럽계 투자은행 크레딧스위스(CS)는 최근 중국이 2020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저하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중국시장의 잠재력에 그 어느 때보다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왕성한 소비력을 뽐내온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은 금융위기 충격으로 빚을 내 소비하던 습관을 버리고 저축에 집중하고 있다. 내수시장이 무너지자 해외로 눈을 돌린 미국 기업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 역시 중국이다.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부 장관은 중국 정부가 건강보험 및 연금체계를 개선해 퇴직자들의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국을 공략하려는 기업들의 타깃 선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가이트너나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이 기대하는 중국 퇴직자들의 소비력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파란만장을 겪은 중국 고령자들은 지금의 경기침체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뿐더러 소득 수준이 낮고 저축률이 60%에 달하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강화돼도 소비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레이샤오산(雷小山) 차이나마케팅리서치그룹 대표도 21일(현지시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중국시장을 공략하려면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나 퇴직자들보다는 정저우나 허페이와 같은 지방 중소도시를 선점하라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브랜드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판매채널도 대형 유통업체로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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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웨이는 고가전략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 중국시장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다국적기업으로 꼽힌다. 사진은 중국 하이난성 산야에 있는 암웨이 매장. |
레이에 따르면 중국에는 정저우처럼 인구 100만이 넘는 중소도시가 100여곳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지방 중소도시민들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가전제품 등 소비재 가격의 13%를 보조해 주고 있기도 하다. 중국 중소도시 소비자들의 소득수준과 외국제품 선호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 대도시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가전 메이커 하이얼과 같은 토종업체들이 중소도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외국 기업이 중국 중소도시를 공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레이는 우선 상품 가치를 높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도시민들에 비해 소득수준이 낮은 지방도시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할 것이라는 통념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플라즈마나 LCD TV와 같은 첨단 제품은 13%의 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레이는 중국의 지방도시 소비자들이 평면 TV를 선택하며 보조금을 기꺼이 포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올해 중국에서 기록적인 TV 판매 실적을 거둔 것도 지방도시의 소비력이 반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 직접판매(다단계)업체 암웨이의 고가전략을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소개됐다. 암웨이는 세계적인 세제 브랜드인 프록터앤갬블(P&G)의 '타이드(Tide)'보다 훨씬 비싼 세제를 중국에 선보였다. 그 결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암웨이 세제가 최고라는 인식이 확산돼 암웨이가 세제시장을 장악하게 됐다는 것이다. 암웨이는 가격 부담을 덜기 위해 세제를 소량으로 낱개 포장하는 지혜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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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중국시장을 공략하려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판매 채널을 월마트와 같은 대형 매장으로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푸젠성 샤먼에 있는 미국 대형 유통점 월마트. |
레이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통업체 선정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인들이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중국인들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인들은 제품이 팔리는 장소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짝퉁' 제품에 대한 불안감 탓에 구멍가게보다는 유럽의 오샹(Auchan)이나 미국 월마트처럼 이름값하는 대형 유통점을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향후 3년 안에 중국에서 팔리는 제품의 절반 이상이 이런 대형 유통점을 통해 팔려 나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중국 소비자들의 10% 이상은 식품만은 신뢰할 수 있는 매장에서 구입하길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레이는 "중국시장이 신흥시장의 변화를 선도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을 공략하려면 중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와 유통채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년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한 타오둥 크레딧스위스 홍콩지사 이코노미스트도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구조적 변화가 세계 소비시장 판도와 중국의 성장모델의 전환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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