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제품의 디자인과 성능을 개선하는 데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생체모방)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로 자연만한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제품의 겉모양과 품질만 문제 삼았던 소비자들도 최근에는 제품이 만들어진 '경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데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없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한 가운데 있는 이가 재닌 베뉴스(Janine Benyus)다. 베뉴스는 1997년 낸 저서 '바이오미미크리:자연을 통해 이룬 혁신(Biomimicry:Innovation Inspired by Nature)'을 통해 바이오미미크리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200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환경 영웅'으로 꼽기도 한 그는 이 책에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뤄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베뉴스는 바이오미미크리를 통해 기업들이 환경 오염을 줄이고 연료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설립된 게 바이오미미크리 길드(Biomimicry Guiuld)다. 일종의 혁신 전문 컨설팅업체인 길드는 기업들에게 자연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상용화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조언해 주고 있다.
최근까지 길드와 공동작업을 수행했던 기업 리스트에는 제너럴일렉트릭(GE), 휴렛팩커드(HP), 프록터앤갬블(P&G) 등 적잖은 글로벌 대기업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나사(NASAㆍ미국 항공우주국)도 길드의 주요 고객 가운데 하나다.
미국 텍스타일 제조업체인 인터페이스는 한 때 공해의 주범으로 비난받았지만 길드의 조언으로 기업 경영 전략에 바이오미미크리를 적용한 결과 연간 13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지속성장의 모범사례로 거듭났다.
베뉴스는 기업 시스템에도 자체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생태계와 같은 먹이사슬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먹이사슬이 촘촘해야 해로운 부산물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바이오미미크리를 적용했다 낭패를 본 사례도 있다. 나이키가 출시 이후 한 시즌만인 2007년 생산을 중단한 '고트텍(Goat Tek)'이 대표적이다. 이 런닝화는 험준한 산악지대를 자유롭게 누비고 다니는 염소(goat)의 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됐다.
그러나 염소 발 모양을 한 신발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베뉴스는 무턱대고 자연을 모방하는 것은 우스꽝스런 디자인으로 이어지기 쉬워 기업 수익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바이오미미크리가 꼭 제품의 디자인과 성능 개선에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베뉴스는 그보다 기업 문화를 자연 친화적으로 바꾸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방해하는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실타래를 풀 수 없다"며 "시스템 차원에서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이오미미크리인스티튜트(Biomimicry Institue)에 이런 철학이 잘 반영돼 있다. 길드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컨설팅업체라면 인스티튜트는 비영리로 운영되는 바이오미미크리 연구단체다. 여기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바이오미미크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바이오미미크리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인스티튜트는 특히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도 열심이다. 유치원생에서 대학생까지 수준에 맞는 커리큘럼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에도 나서고 있다. 인스티튜가 공인하는 첫 바이오미미크리 전문가들이 내년에 배출될 예정이다.
인스티튜트는 세계 굴지의 건축 디자인 기업인 HOK와 손잡고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자연을 모방한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아예 도시 전체에 자연이 주는 영감을 불어넣자는 베뉴스의 의지가 반영됐다. 그는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결국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HOK가 추진하고 있는 12개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라바사 타운십(Lavasa Township)'이다. 이 프로젝트는 인도 중서부 푸네(Pune) 인근 12000 에이커(약 4856만㎡) 면적에 바이오미미크리를 적용해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 지역은 물 관리가 취약하고 토양이 좋지 않아 홍수가 잦은 지역이다. 인스티튜트와 HOK는 이 지역의 척박한 환경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태계의 특성을 연구하고 도시 개발에 그 결과를 적용할 계획이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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