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이른바 감세의 선순환 효과를 강조하는 정부의 방침에 분명한 반대입장을 거듭 천명함에 따라 향후 경제부처와의 충돌 가능성이 현실화될 공산이 농후해졌다.
22일 국회와 기획재정부 등 관련부처에 따르면 전날에 이어 이틀째 이어진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정 후보자는 현 정부 들어 계속돼 온 정부의 감세정책 등 경제운용을 둘러싸고 그동안 학자로서 견지해 온 비판적인 입장을 정부내에서도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소신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정 후보자가 청문회 첫날 한나라당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나성린 의원과의 설전에서 감세와 관련 "기업들의 투자유도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 지출재원 마련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대목은 증세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풀이되면서 향후 기재부 등 경제부처의 정책운용에서 뿐만 아니라 집권 여당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 후보자의 이같은 소신은 이른바 '부자.대기업 감세정책'이 국가부채를 눈덩이처럼 키워 재정건전성에 적신호를 드리웠다는 민주당 등 야권의 주장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어서 내각의 수장을 맡아야 할 후보자로서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 후보자가 "감세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마당에 감세를 하다가 금방 유보하는 것은 정책 일관성에 좋지 않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논란이 수그러지들지 않고 있기 때문. 기획재정부 윤영선 세제실장이 "총리로서도 법이 제정되기 전이라면 몰라도 이미 개정된 후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것으로 감세철회나 유보의 말씀이 아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지만 전체 맥락을 보면 시기와 방법론에서의 차이일 뿐 언제든지 증세로 돌아설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다고 보는게 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만 이미 정부가 내년 세제개편안 입법을 마무리한 상태인데다 경제위기를 무난하게 수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경제부처와 입각초기부터 지나치게 날을 세워서는 세종시(행정복합도시) 건설 원안수정 등을 놓고 펼쳐지고 있는 논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현실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엇갈리고 있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정책수장과 내각을 조율하는 총리 후보와는 분명히 다른 자리로 정 후보자가 개인으로서와 정부 정책 책임자 입장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며 "잘 조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상민 참여연대 간사는 "총리 후보자로 내정되기 이전에 감세보다는 교육과 의료 등의 사회안전망 확충과 자영업자.중소기업에 정부지출 확대 소신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정 후보자가 정부의 부자감세를 철회시키게 된다면 업적으로 남을 것"이라면서도 "만일 청문회 통과를 위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면 혹독한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 후보자가 한국은행의 금융감독권한 기능 강화를 주장하고 나선 점도 주목할만하다. 이는 최근 한국은행의 단독조사권 및 검사권 신설을 골자로 하는 한은법 개정을 두고 기재부와 한은이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공방을 벌이는 와중이어서 기재부로서는 곤혹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아주경제= 김선환 기자 sh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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