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인 로드 바이런은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해졌더라'는 말을 남겼다. 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에겐 솔깃한 얘기다. 회사의 제품이 출시와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바라는 이들은 무덤에라도 들어가 바이런의 비결을 듣고 싶을 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모래성은 무너지기도 쉽다고 지적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는 조나 버거(Jonah Berger) 교수와 스페인 폼페우파브라대 경제학 교수인 게일 르망(Gael Le Mens)은 "순식간에 인기를 얻으며 매출이 급증하는 제품은 금새 시장에서 퇴출된다"고 말했다.
와튼스쿨이 내는 온라인 경영저널 '날리지앳와튼(Knowledge@Wharton)'은 최근 이들이 이런 결론을 도출한 연구 보고서를 소개했다.
버거와 르망 교수가 주목한 것은 이름이다. 이들은 지난 100년간 미국과 프랑스에서 출생한 이들의 이름을 분석했다. 처음 이름이 붙여졌을 때 해당 이름의 인기도와 같은 이름의 확산 및 기피 속도 등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버거와 르망이 이름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름이 기술 수준이나 다른 상업적인 요인과 무관하게 인기도의 추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버거는 "이름은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가진 상징적 의미를 대표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냉장고와 같은 제품의 브랜드 인기도는 기술적인 변화나 제품의 품질에 크게 영향 받지만 자동차나 의류 브랜드는 구매자의 개성을 자극하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 지난 100년간 미국과 프랑스에서 샤를렌(Charlene) 트리시아(Tricia) 크리스티(Kristi)라고 이름 붙여진 여아는 0.20%에 불과했다. 하지만 각각의 이름은 일정 기간 최전성기를 누렸고 그 기간도 크게 달랐다.
'샤를렌'은 1910~1950년 전성기를 누렸고 '크리스티'와 '트리시아'는 1970년대 부모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중 늦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이름은 물론 전성기가 비교적 길었던 샤를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이름보다 10% 더 빠른 속도로 전성기에 다다른 이름은 인기 추락 속도 역시 12.5% 빨랐다.
버거는 "대부분의 마케팅 임원들은 그들의 제품이 보다 빨리 인기를 얻기 바라지만 이는 최선의 전략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일찍 인기몰이를 하는 제품은 그만큼 수명이 짧고 전반적으로 실패 확률이 높다"며 "일시적인 유행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거와 르망은 출산을 앞두고 있는 661쌍의 미국 부모들을 상대로 아이 이름에 관한 온라인 조사도 실시했다. 두 교수는 부모들에게 모두 30개의 이름을 제시하고 이 가운데 마음에 드는 이름을 선택하도록 했다. 물론 이름의 인기도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응답자들은 대부분 최근 인기가 높은 이름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버거는 "부모들은 직관적으로 어떤 이름이 흔한 이름인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며 "이들은 자기 아이의 이름이 급속히 확산되는 데 대해 경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부모들이 아이의 이름을 짓는 데는 다른 이들과 같아지려는 욕망과 독특한 개성을 유지하려는 욕망 사이의 긴장이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너무 흔해도 문제지만 부모들은 너무 튀는 이름도 바라지 않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확산 속도'로 버거는 음반업계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인의 음반이 눈에 띄게 잘 팔린다고 해도 전반적인 매출은 지속적인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베테랑 뮤지션에 비할 게 못 된다는 것이다. 버거는 "인기의 확산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퇴출 속도 역시 빠르다는 의미"라며 "이는 전반적인 성공에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되는 순간 인기가 급상승하는 것은 광고 덕분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쌓인 인기는 광고가 중단되는 순간 무너지기 쉽다고 버거는 지적한다. 물론 제품에 따라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시장의 문화적인 취향과 무관한 기술 중심의 제품이 대표적이다.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첨단 제품은 단기간에 인기를 모으더라도 그 이상의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인기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자동차나 의류 등 소비자와의 소통을 필요로 하는 제품의 경우 하루 아침에 얻은 유명세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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